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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Feb 25. 2016

예루살렘전기

이교도의 피와 살이 늘 번제로 타 올라야 하는 곳


저자의 박식함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박식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데이터들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탁월한 능력과 위트 있는 문장력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마치 뉴욕의 명품 백화점을 혼자서 천천히 마음껏 쇼핑한 느낌이다. 세상의 모든 명품들이 진열된 쇼핑몰 한 가운데를 친절한  안내받으면서 쇼핑한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마음은 편치 못하다. 쇼핑몰이 모두 핏빛으로 채색되어 있다. 피가 여기저기서 뚝뚝 떨어지고 있고 죽어가면서 고통스럽게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책 어느 페이지를 넘겨도 푸른 바다와 쉴만한 초장은 보이지 않고 그저 죽이고 폐허를 만들고 다시 복수하고 죽이는 이야기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 아, 그렇구나 이게 예루살렘이구나. 모두의 성지인 곳 따라서 피의 제물이 늘 필요한 곳. 이교도의 피와 살이 늘 번제로 타 올라야 하는 곳,  예루살렘!!


아마 이 책을 처음 선택했을 때, 잠재되어 있던 내 마음은 “성지 예루살렘의 영적 아우라에 대한 역사적 사례”들 이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그와 비숫한 정서였을 것이다. 요즘 그런 것들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살육 보고서를 계속 읽으면서 도대체 왜 이렇게 역사적 사례들이 많은지, 그리고 왜 그걸 다 기록했는지,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고 답답했다. 어차피 지난 일들이라 분량이 적절하면 읽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재미있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마지막까지 내내 답답했다.


예루살렘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종교와 인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긴 역사 속에서 그 살육의 현장을 지켜본 예루살렘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성지에서 다른 믿음의 신자들을 죽이면서 – 물론 정치적 군사적 동기와 중첩되겠지만 –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확신했을까?  발아래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들으면서........


고통스럽다. 보지 않았으면 좋을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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