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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Jul 24. 2016

5.세계여행을 떠나면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을까?

솔직히 약간은 도움된다.

일상이 나를 침범할 때,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기 싫고 한 마디도 듣고 싶지 않을 때, 작년 겨울에 나는 혼자 태국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휴가지에서 읽으면 좋은 인문서적 10선을 가방 속에 넣으면서 나는 이 여행에서 '진정한 나', '자유로운 나의 본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렇게 속아 놓고서도!


이제와 고백하자면 3박 4일의 태국 여행에서 책을 많이 읽기는 했다. 가져간 책 중 4권을 읽었는데, 하루 종일 게스트하우스 거실 소파에 모로 누워 책만 보다 보니 새로 오는 손님들이 나를 스텝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보다 못한 여행객 한 명이 나를 보고서 '너는 왜 이러고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숙소의 빵빵한 와이파이 덕분에 페북도 많이 하고 카톡도 원 없이 했다. 친구들의 먹방 사진에 꼼꼼히 댓글을 달아주고 수다 떨었다. 게으름을 떨구고 찾아간 현지 식당에서는 음식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바빴다.


이 모든 것을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아무 죄가 없다.

처음부터 일상에서 벗어니 진정한 나를 찾고자 한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다들 여행을 떠나면 진정한 자아를 찾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조차도 그런 생각으로 여행 기간을 9달로 잡았다. 아기가 태어나는 데는 9달이 걸리니까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는 데에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거야.라고 나름의 의미부여도 하면서.


결과는?

모른다. 새로운 나를 찾으면 마치 득도한 것처럼 머리 위에 후광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내적인 나의 변화는 나만이 알 수 있는데 그것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냥 전보다 더 느긋하고 여유로워진 내가 있을 뿐이다. 이 변화가 세계여행 때문인지, 아님 나이 들면서 철들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일을 하면서 더 많은 성숙을 경험했다.

까다로운 상사를 구슬려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처세술, 짧은 시간 안에 몰아치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 직장 동료의 이유 없는 음해와 견제에 대처하는 법, 20년 이상 차이나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동료로서 신뢰를 쌓는 법 등 회사에서 일을 하는 5년 동안 나의 세계가 한 차원 더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다면 세계여행을 추천한다. 세계 각지의 문화를 경험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싶다면 세계여행을 가라. 하지만 당신이 막연히 ‘진정한 자아’를 찾고 싶다면 잠깐 멈춰서 다시 생각해 보자. 꼭 여행만이 정답일까?


우리는 일상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월화수목금요일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간단한 명상과 짧은 글쓰기, 독서,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게 응시하는 등 당신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하는걸 두려워하지 않고 실행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기나긴 여행길에 오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당신과 마주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몇 년간의 긴 여행을 다녀오고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 자신의 적성과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 또한, 여권도 없이 30년 넘는 세월을 국내에서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 당당하고 솔직한 사람도 알고 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날 것의 나를 마주하고 싶어 세계여행을 떠났다. 세계여행은 어떤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는 내 손으로 밥벌이를 하는 성숙한 사회인이 되고 싶었다. 지금의 사회생활은 그런 나의 목적을 만족시키는 수단이다.


세계여행이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처럼 당신을 완벽하게 성숙한 상태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만 버리면 된다.

세계여행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Rome, Italy. 딱 6년전 오늘 찍은 사진. 이날도 무지하게 더워서, 저 분수대 동상이 괜히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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