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원으로 산다는 것
29만 원도 아니고 30만 원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여러 대학이 모여 있는 사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사거리 주변에는 돈 없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박한 가게들이 참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까마득히 어린 나의 선배들도 선배노릇을 할 수 있었던 백반집뿐만 아니라, 5천 원짜리 한 장으로 소개팅 단골 메뉴인 스파게티를 해결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먹거리뿐이었겠나. 500원짜리 두 개만 들고 가면 깡! 깡! 소리를 내며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던 실내 야구장도, 한 개피에 200원씩 나눠 팔던 담배 가게도 다 한 길에 몰려 있었다.
돈을 적게 쓰고자 하면 얼마든지 적게 쓸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았지만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기에는 정말 필요한 것을 살 때 이외에는 지갑을 열기가 어려웠다. 그 당시 나의 체크리스트는 단순했다. 맛, 멋, 질 따위보다는 필요성과 가격이라는 두 가지 항목만 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에게 욕망이 없었을 리가 없다. 다만 생존형 대학생이었던 나는 그때 당시 아르바이트 시급으로 세상 모든 것들을 재단했다. 예를 들면 커피 한 잔은 30분의 서빙과 동일한 가치를 가졌다. 욕망이 노동과 치환되는 순간 내가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욕망은 거세당했다. 그건 차라리 나았다. 거세당하기도 전에 자기 검열에서 탈락한 욕망들도 있었으니. 불쌍한 내 새끼들.
이 거세의 칼바람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욕망을 하나 꼽자면 커피였다. 정확히 말하면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욕망했다. 감사하게도 학교 주위에는 저렴한 커피가게들이 많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도 많았다. 천 원짜리 커피를 사서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이 아닌 오롯이 나 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의 생존과는 전혀 상관없는 지출이고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그 이 외의 일상을 견딜 수 있었다.
지난 월요일에는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스케이트 보드를 샀다. 스케이트 보드의 금액이 대학교 1학년 때 한 달 생활비와 같았다. 지금은 스케이트 보드를 사도 된다. 내가 돈을 벌기에 내 욕망에 이것들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있고, 욕망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수입이 있기 때문이다.
30만 원으로 살던 그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던가, 혹은 그때가 더 행복하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들을 전보다 더 많이 발견하고, 그것들을 마주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은 이 욕망이 나라는 고유한 인격체를 이루는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2,000원짜리 치즈 김밥과 1,500원짜리 일반 김밥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였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나의 모습이다.
서른 살, 나의 욕망은 스케이트 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