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쓴이 Jan 29. 2017

30만 원으로 산다는 것

29만 원도 아니고 30만 원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여러 대학이 모여 있는 사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사거리 주변에는 돈 없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박한 가게들이 참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까마득히 어린 나의 선배들도 선배노릇을 할 수 있었던 백반집뿐만 아니라, 5천 원짜리 한 장으로 소개팅 단골 메뉴인 스파게티를 해결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먹거리뿐이었겠나. 500원짜리 두 개만 들고 가면 깡! 깡! 소리를 내며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던 실내 야구장도, 한 개피에 200원씩 나눠 팔던 담배 가게도 다 한 길에 몰려 있었다. 

돈을 적게 쓰고자 하면 얼마든지 적게 쓸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았지만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기에는 정말 필요한 것을 살 때 이외에는 지갑을 열기가 어려웠다. 그 당시 나의 체크리스트는 단순했다. 맛, 멋, 질 따위보다는 필요성과 가격이라는 두 가지 항목만 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에게 욕망이 없었을 리가 없다. 다만 생존형 대학생이었던 나는 그때 당시 아르바이트 시급으로 세상 모든 것들을 재단했다. 예를 들면 커피 한 잔은 30분의 서빙과 동일한 가치를 가졌다. 욕망이 노동과 치환되는 순간 내가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욕망은 거세당했다. 그건 차라리 나았다. 거세당하기도 전에 자기 검열에서 탈락한 욕망들도 있었으니. 불쌍한 내 새끼들.

이 거세의 칼바람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욕망을 하나 꼽자면 커피였다. 정확히 말하면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욕망했다. 감사하게도 학교 주위에는 저렴한 커피가게들이 많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도 많았다. 천 원짜리 커피를 사서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이 아닌 오롯이 나 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의 생존과는 전혀 상관없는 지출이고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그 이 외의 일상을 견딜 수 있었다. 

지난 월요일에는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스케이트 보드를 샀다. 스케이트 보드의 금액이 대학교 1학년 때 한 달 생활비와 같았다. 지금은 스케이트 보드를 사도 된다. 내가 돈을 벌기에 내 욕망에 이것들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있고, 욕망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수입이 있기 때문이다. 

30만 원으로 살던 그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던가, 혹은 그때가 더 행복하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들을 전보다 더 많이 발견하고, 그것들을 마주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은 이 욕망이 나라는 고유한 인격체를 이루는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2,000원짜리 치즈 김밥과 1,500원짜리 일반 김밥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였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나의 모습이다. 


서른 살, 나의 욕망은 스케이트 보드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아직 세상을 모른다는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