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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Feb 12. 2017

우주먼지들 화이팅!

YO! 나는 MC긔요미! 일더하기 일은 긔요미!

몇 살이었지, 내가 처음 신체검사를 받았던 때가. 
부라자 끈을 신경 쓴 기억이 없는 걸 보니 5학년 이전이었나 보다. 그때가 내가 처음 혈액형을 알게 때였다. 

다른 혈액형들과는 다르게 내 혈액형이 두드러지게 가지고 있는 기질, 내성적, 소심함 같은 것들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나는 그저 좋았다. 그게 나를 다른 혈액형들과 구분 지어 준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특별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특별한 나를 이 세상이  알아주지 못하는 것에 분노하던 나날이었다. 영화 '매드맥스'의 전차부대 맨 앞에서 기타를 치는 빨간 내복의 락스타처럼, 나 여기 있다고!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치며 살았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상관하지 않고 나 좋을 대로만 행동했던 영락없는 중 2였다. 나의 보물 1호 워크맨과 함께라면 나는 어디서도 노래를 부를 수 있던 아이였다. 욕은 또 얼마나 잘(자주) 했던지. 쇼미 더 머니가 조금만 더 일찍이었다면 예선 정도는 나갈 수 있었을 텐데. 닉네임은 MC긔요미 정도로. 

MC긔요미에게는 평범하다는 말이 모욕으로 들렸다. '넌 아무 가치 없어' 혹은 '별 볼일 없어'의 다른 뜻이었달까. 상상의 청중을 향해 비트를 날리고 스웩을 부렸지만 나는 이제 안다. 평범해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반장은 못해봤어도 미화부장은 몇 번 했었다. 중학교 때는 계주 1번 주자로 활약. 성적은 중상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전교 1등 한번 못했지만 무리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없이 바로 대학교에 입학, 몇 번의 휴학을 했지만 인턴, 여행으로 알차게 보내고 졸업. 졸업과 동시에 번듯한 직장에 입사. 3년 내 퇴사율 30%의 늪을 지나 순탄하게 근무하여 약간의 재산을 모아 지금 여기. 마침표 하나하나마다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인생도 도레미파솔라시도처럼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운율을 이루면 좋을 텐데 나는 '도'에서 '레'로 넘어가는 것만으로도 지쳐버린다. 이 노래를 내가 마칠 수 있을까.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인데 평범하기 위해서 죽을 만큼 노오오력을 해야 한다면 그것 자체로 특별한 일이다. 애초에 내 주변만 둘러봐도 대학입시와 취직을 재수 없이 맞는 시기에 이룬 사람은 손에 꼽는다. 이토록 희소한 평범함이라니 오히려 특별하게 살기가 더 쉬울 지경이다. 이것 봐 나는 하루 만에 포켓몬GO 레벨을 10이나 올렸다구! 내가 이만큼 특별해! (부질없다)

특별하면 어떻고 평범하면 어떤가. 어차피 이 삶은 나만 알 수 있는 삶인걸. 이 글을 보는 그 어느 누구도 내가 어젯밤 11시에 샤워하며 000에 000을 00한 것을 모르지 않나. 또 내 침대 아래에는 0000, 000 00같은 만화책이 무려 9년째 나와 함께 하고 있다(이건 누군가 알 수도 있겠다)

전직 MC긔요미로서 스웩을 부려 보자면, 내 바람은 귀천하기 전 이 소풍을 무사히 끝낼 수 있기를, 끝까지 나로 존재할 수 있기를. 우주먼지들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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