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쓴이 Mar 19. 2017

회원제로 운영하는 bar에
손님이 된다는 건

여기는 누군가의 라라랜드랍니다. 

"왜 사장님은 회원제로 바를 운영하는 거예요?"
나보고 2월의 첫 손님이라며 웃는 사장님에게 물어보았다. 눈치 없는 나는 2월 6일에 온 내가 2월의 첫 손님이라는 그의 말이 답답할 뿐이다. 서울 한가운데서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싱글몰트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바가 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이곳에 오지 않는 것인지. 

2월 의 첫 손님인 나는 그 바의 9번째 회원이다. 이곳은 회원제로 운영하는 바, 입구에 번호 키가 있어 회원에게만 비밀번호를 알려 준다. 유리로 된 문 바깥에서는 이곳을 바라볼 수 있지만, 혼자 오거나, 혹은 회원과 동행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다. 회원이 되어도 아무 때나 올 수는 없다. 술에 취한 채로는 입장 금지, 4인 이상은 입장 금지. 이유는 단순하다. 사장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까.
바로 옆에 있는 미용실에는 커트 5,000원, 파마 20,000원이 쓰여 있다. 이런 동네에서 이렇게 도도한 바에 손님이 많을 리가 없다.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욕은 또 얼마나 많이 들었을지.

참, 
답답한 양반이다. 

한숨 한 모금을 쉬며 위스키 한 모금을 혀 위에 올려놓는다. 올려놓자마자 목구멍 안쪽까지 진한 알코올 향이 퍼진다. 알코올이 목젖을 지나는 순간부터 온몸이 뜨거워진다. 혈관 구석구석까지 온기가 퍼지는 느낌이 마치 온천에 몸을 담근 것 같다. 아, 큰일이다 취기가 올라온다. 

"라라랜드를 보셨나요"
답답하고 고지식한 그가 괜히 미워져 나는 심술을 부린다. 라라랜드,라는 단어가 끝나자마자 그의 눈이 반짝거린다. 사십 평생 본 영화 중에 가장 좋았다고, 인생 영화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꿈을 이루고 나서 행복해지는 게 이상하지는 않나요. 꿈이 인생의 종착역 같잖아요. 너무 일찍 이루면 남은 삶이 허망할 것이고, 너무 늦게 이루면 그동안의 삶이 고통스러우니까요."
당신이 어젯밤 식초로 정성껏 닦았을 위스키잔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말한다.


꿈꿨던 공간을 이뤘으나 일주일에 10만 원도 벌지 못하는 당신은 허망하지 않은지. 

이루기는 했으나 고통스러운 것도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그걸 목표로 인생을 사는 게 맞는 건지. 


당신을 보며 나의 미래를 투영한다. 
나에게도 꿈 비슷한 것이 있다. 

그래서 당신의 대답을 듣기 위해 나는 더 잔인해질 수가 있다.

당신은 영악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삶은 너무 길어요. 그러니까 사는 중간에 꿈을 이룰 수도 있는 거에요. 그렇다고 꿈이 삶은 아니에요. 하나를 이뤘으면 그 다음 꿈을 꾸고, 또 이르면 되요. 

난 그냥 내 인생을 나답게 살고 싶을 뿐이에요."

총알 같은 잔에 담긴 럼을 주면서 그는 말한다. 

당신의 목소리에서 살아오면서 포기했을, 후회했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삶의 무게를 느꼈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나는 총알을 목에 털어 넣는다. 그래. 인생, 인생이란 말이지. 


그래서 여기는 당신의 라라랜드구나


p.s 이 글의 배경이 된 bar는 실제로 있답니다. 

 http://blog.naver.com/rbar8901


매거진의 이전글 속사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