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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Apr 01. 2017

7. 물속의 달

3월의 제주도는 추웠다. 

제주도의 원시림이 한눈에 보이는 호텔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하늘을 보았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달이 나를 쳐다본다. 몸이 노곤할 정도로 따뜻한 온수 풀이 거울처럼 달을 비췄다.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지, 알 수 없는 감격에 젖어 숙소로 들어갔다. 시트러스 향이 나는 록시땅 바디워시를 집어 들면서 생각한다.

이제 이만큼은 누릴 수 있잖아?

먼 옛날, 세 벌의 옷과 한 켤레의 신발로 대륙을 누비던 시절에는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더운 나라에서 산 반바지를 추운 나라에 갔을 때는 미련 없이 버렸다. 그리고 남이 버린 잠바를 주워 입고 몇 달을 다녔다. 나의 45리터짜리 가방은 당장의 생존을 위한 물건 이외는 허락하지 않았다. 샴푸와 바디워시를 둘 다 들고 다니기 무거워 샴푸로 온몸을 닦고 심지어 빨래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와 지금의 나의 통장 잔고를 비교하면 나조차도 놀랍다.


처음 저축 금액이 1억이 되었던 날. 나는 아무 감흥이 들지 않았다. 6개월치의 월급이 한 번에 입금된 날도, 30ml에 20만 원을 호가하는 항수를 샀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버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책장을 넘기던 손가락이 잠깐 멈칫했을 뿐이었다. 

뭔가를 동경했던 때 보다 그것을 이루었을 때의 쾌감은 항상 적었다. 쾌감만을 비교한다면 차라리 담배를 한 대 태우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지금이나 그때나, 예쁜 것들, 질이 좋은 것들은 항상 탐난다. 그때는 가질 수 없었고 지금은 가질 수 있지만, 이제는 안다. 가진다고 그만큼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뭔가를 가지는 것은 행복과는 관계없다는 것을. 아니, 어느 정도까지만 관계있다는 것을.

피곤한 밤 부담 없이 택시를 탈 수 있을 정도의 수입. 우연히 사진을 찍혀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몸매. 계절마다 바꿔 뿌리는 고급스러운 향수. 꿈꾸던 미래가 차곡차곡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던 마음이 없어진 자리에 무엇이 자리 잡을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것은 절망보다는 어리둥절함에 가까웠다

눈앞에 있는 공을 차려고 했을 때 갑자기 공은 사라지고, 내가 골을 넣었다는 부저소리만 들리는 기분이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

가만히 바라보았을 때가 더 행복했던, 
나의 물속의 달은 어디에 갔는지. 

나는 대체 무엇을 기대한 걸까?
무엇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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