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하고 온 메일에는 '00팀 여름휴가지 조사'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우리 회사는 보통 일주일 동안 여름휴가를 가는데, 이 장기간의 부재 시기가 겹치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기에 미리 조사하여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팀원 간의 휴가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다.
벌써 7월 중순, 바야흐로 여름휴가 시즌이다.
팀원들은 메일을 빌미 삼아 하나둘씩 몇 주 전부터 생각해 두었을 여름휴가 계획을 주섬주섬 꺼내어 얘기한다. 더러는 휴양지로, 더러는 관광지로 떠나는 계획을 말하는 사람들의 눈에 생기가 돈다. 일 년에 단 한번 있는 기회다. 긴 여행으로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느끼고, 비우고 혹은 채우고 오려는 각자의 계획에는 기대가 한소끔 끓고 있다.
나는 닳고 닳은 여행자다.라고 말하기에는 고작 스물몇 개 나라밖에 가 보지 않았지만 나는 도무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여행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가 정의하는 여행은 '만들어진 나'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 - 직업, 나이, 친구, 가족 - 을 떠나 온전히 '날것의 내'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정의하는 여행이다. 그런데 점점 이게 힘들어진다. 아무래도 왕복 티켓이 원흉인 것 같다. 돌아올 날이 정해진 여행에서 내가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니다 아무래도 주범은 인증샷과 sns다. 예쁘게 차려입은 셀카 한 장 찍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떠나 있지만, 떠날 수 없다. 아무리 멀리 가도 돌아와야 하는 여행. 좋아요 숫자를 보며 흐뭇해하는 여행. 내가 바라는 여행은 이런 게 아니다.
낯선 나라의 공항에 내려 가방을 찾는 순간 문득, 내가 나를 두고 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까 봐 두렵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어디로도 떠나고 싶지 않은 여행자.
badian resort&spa, cebu, philippi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