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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Jun 04. 2017

나와 문학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비행기를 타면 늘 창가 자리에 앉는다. 하늘 위에 떠있는 쇳덩어리의 구석에 구겨져서 잠을 자는 게 내가 긴 비행을 견디는 방법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꾸벅꾸벅 졸던 중에 문득 잠을 깨어 마주친 노을은, 흠뻑 잠기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오래도록 이 감정을 기억하고 싶어 사진기를 들어 노을을 향한 나는 바로 후회했다.
내가 남기고 싶은 것은 하늘이 아니라, 노을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낀 나의 감정인데, 사진은 고작 이 순간의 화면만을 기록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순간의 내 마음은 어떻게 남겨야 할까

가끔, 
읽다가 빠져 죽고 싶은 문장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내 삶의 권태를 정의해주었고,
'이렇게 아름다운데 세상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했다'는 문장은 아름다운 것을 볼 때의 내 감정을 대변하고,
'한 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는 문장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나의 자장가였다. 

입술을 열어 조용히 저 문장들을 속삭이면 옆에서 누군가 내게 말을 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도 모르고 있던 나의 감정을 글자로 보여주는 문장을 만날 때면 아주 오랜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만 같다.

사람이 가장 외로워지는 순간은 내 생각을 남들이 받아주지 않으리라 느낄 때이다. 고양이를 보고 맛있겠다고 느끼거나, 구름을 보고 오존의 투과율을 계산하고 있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외로움에 패배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비슷한 생각을 하는 타인을 만나야 한다. 너무 멀어서, 아니면 이미 죽어버려서 만날 수 없다면 도서관으로 가자. 

수천수만 권의 책 속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바로 이 순간이 문학이 삶에 가지는 가치다. 


내 독서에 만약 목적이 있다면 - 시간을 때우거나, 멋져 보이기 위한 것을 제외하고 -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다. 나는 자주 외로워지기 때문에 자주 위로받아야 한다. 스마트폰을 켜서 친구 목록을 죽 훑어보는 대신에 나는 책을 집어 든다. 
만나서, 위로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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