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독립을 했다. 남들보다 늦다면 늦고, 이르다면 이른 나이지만 독립할 자금을 '겨우'마련하고 나서야 '드디어' 내 이름으로 된 임대차 계약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혼자 사는 외로움, 고독감은 겪어 보지 않아도 익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혼자 살면서 느끼는 공포감은 꽤 낯설고, 그래서 당혹스럽다. 공포감.
읭?????
그렇다.
공포감이다. 방금도 내 방문 너머로 들리는 쾅! 하는 소리 (아마도 윗집 양반이 화장실이 급한 나머지 문을 세게 닫은 모양이다)에 심장이 잠깐 멈췄다가 약 3초 뒤 슬그머니 잠긴 방문을 열어 거실을 바라보았다.
손에는 호신용 스프레이를 쥔 채. 장소만 그대로 바꿔 정글에 가져다 놓아도 될 것 같은 오버액션은 왜 때문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것도 아닌데 소리, 빛 등등 그냥 이 집의 안과 밖에 있는 모든 것들에 예민해진다. 저 멀리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나에게는 매드맥스의 전차군단 소리로 들리는 이 예민함.
지금이 수렵 사회였다면 예민한 감각을 이용해 맨손으로 토끼 한두 마리 정도는 쉽게 잡았으리라 확신한다. 이건 다 내가 혼자 살기 때문인가 아니면 혼자 사는 여자이기 때문인가. 혼자 사는 여성 가구가 범죄에 더 취약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도선생님들이 여성 가구에만 방문하시는 건 아닐 것이다. 여럿이 사는 가정보다는 싱글 가구가 범죄에 취약하고, 그중에서도 여성이 사는 가구는 더 취약한 것뿐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달까. 마치 그냥 더운 것과 열대야가 동반된 더위의 차이 같은 것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해당되는 일만 크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심리학 개론 시간에 졸지 말고 더 공부해 놓을 걸, 그럼 이렇게 글 쓸 때에도 멋들어지게 말하고 또 학점도 잘 나왔을 텐데) 나도 평범한 사람인 관계로, 내가 혼자 사는 여자인 관계로, 내 위험이 가장 커 보인다. '겨우', '드디어' 독립을 했건만 선물 받은 머그컵을 인스타에 자랑하는 것도 머뭇거려진다. 혼자 사는 집은 티가 나기 마련이니까. 얼마 전에는 친구들을 불러서 성대한(!) 파티를 했는데 그것도 올리기 조심스럽다. 혼자 사는 집은 티가 나기 마련이니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낙엽 하나 주워 들고 '드디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라고 쓰는 것도 조심스러워질 지경이다. 혼자 사는 집은 티가.... 그만하자. 자취하면 팬티만 입고 거실을 돌아다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방금 빤 속옷이 신경 쓰여 속옷만 따로 모아 내 방에서 말리고 있는 신세라니. 볕을 받지 못하고 마른 속옷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나고, 그 냄새 때문에 어젯밤 꿈에는 치즈가 나왔다. 처량하고 소심한 나의 자취 인생. 이런 걸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