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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Sep 16. 2017

결혼하지 않은 인생

얼마 전에 퍽 당혹스러운 일을 연달아 겪었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집에서 나와 작은 전셋집을 구하게 되었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노닥거리는 중, 예전 집에 비해 출근시간이 가까워졌다고 좋아하는 나를 보며 공인중개사가 물었다. 


"남편분 직장은 여기랑 가깝나요?" 


순간 당황한 나는 나 혼자 사는 집이라고, 전세금은 혼자 벌어 마련한 것이라고 묻지도 않는 말에 주절주절 변명 조로 대답까지 해 버렸다.


또 한 번 독립과 관련된 일이다. 기왕 혼자 사는 것, 매일 쓰는 가전제품을 신제품으로 사고 싶어 전자제품 전시장에 들어갔다.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을 보려고 해요"라고 말하자마자 점원이 '신혼부부 특가'전단지를 나에게 보여 준 것이다. 또 당황한 나는 신혼부부가 아니라 혼자 사는데 쓸 가전을 고르는 것이라며 또 묻지도 않는 말에 대답을 하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말을 하자 그중에 몇몇이 나에게 '결혼하기 전에 미리 겪는 일이라고 생각해'라며 위로해 주었다. 


나의 미래를 그들이 어찌 알고?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하는 행동(전셋집을 구하고 가전제품을 사는)을 했기 때문에 충분히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이었지만 머릿속이 개운하지는 않다. 마치 온 세상이 나를 '예비' 기혼자로 바라보는 것만 같다. 


내가 평생을 독신으로 살지, 아니면 좋은 사람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행복은 순간순간의 행복들의 총합이라고 믿는 바에 따라 충실히 매 순간을 행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번듯한 집, 신상품 가전제품을 신혼부부의 것으로 한정 짓는 세태이다. 


혼수가전이라고 설명하지만 사실상 모든 가전들...


나처럼 혼자 사는 중에 신상품을 사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정을 이루었으나 오래된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분가하지 않고 한 쪽의 부모님과 같이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혼부부가 갖추어야 하는 것들 - 집,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 은 '다수의' 신혼부부가 준비하는 것들의 교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허나 분홍색 예쁜 글씨체로 '파격특가! 오직 신혼부부에게만!'이라고 적힌 전단지는 오직 결혼한 사람만 저것을 가질 자격이 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는 인생을 위한 것들은 무엇인가. 

또 결혼하였으나 '다수'안에 들지 않는 인생을 위한 것들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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