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이던 시절, 처음 듣는 단어와 개념으로 매일 밤 늦게까지 따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책 한 권 분량의 프린트를 쌓아 옆에 놓고서는 인터넷으로 개념과 단어를 찾는 아주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이었다. 어떤 선배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대견하게 생각했고, 어떤 선배들은 회사에 있는 시간이 너무 과다하게 많은 것이 아니냐며, '나의 삶'을 챙기라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을 줄인 단어인 '워라밸'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말로, 퇴근 이후의 삶도 근무시간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옛날처럼 평생 직장이 없어지고, 고용 안정성이 줄어드는 지금, 회사 일에 온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직개편이라는 파도, 시장 변화라는 바람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에 앉아 있으면서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방금 나온 '4차 산업혁명의 기업의 과제'등을 읽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한동안 혼란했다.
자리에 앉아 회사 일과 관련된 공부를 하는 것이 마치 나를 회사 일만 모르는 멍청이로 만드는 것 같았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꿈'이나 '자아'같은걸 찾아 떠나야 할 것만 같았다. 허나 '워크'대신 선택할 '라이프'가 딱히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가야 할지 뒤로 가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서 있던 시기. 그 순간에도 나의 삶은 잘도 흘러갔다.
나의 삶
아침에 일어나 알람시계를 끄는 순간, 어려운 내용의 보고서를 쓰는 순간, 친구들과 만나 방금 본 영화 내용을 떠드는 순간. 이 모든 순간이 나의 삶이다. 어떤 순간은 나의 의지와 선택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순간은 의식하지 못한 채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도 한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나의 삶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다. 삶은 일상의 집합체니까.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여 나의 삶을 만드는 것이라면,
그런데 마침 내가 선택한 것이 모래성이라면,
그리고 당장 모래사장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없다면,
그렇다면 당장 눈 앞에 있는 하루를 성실하게 채워 나가고 싶다.
결국 인생은 내가 행복하면 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