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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Oct 03. 2017

저는 이 봉사활동이 불편한데요.

새해를 맞아 매 달 1회의 봉사활동을 가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새해 약속 단골 메뉴였던 다이어트, 돈 모으기와는 다르게 이 약속은 매 달 꼬박꼬박 지키고 있다. 

내 마음에 드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열리는 날과 내가 가능한 날을 맞춰서 미리 일정을 잡다보니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을 빠지지 않고 가게 된다. 이렇게 봉사활동을 한 지도 벌써 9회 째다. 


고작 9번이냐.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변화다.


우선, 전에는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규칙적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첫번째.

그리고 그것이 여러 사람과 같이 하는 단체활동이라는 것이 두번째다. (팀플보다는 갠전이 편했었다)


의외로 봉사활동이라는 점, 그러니까 남을 돕는 일이라는데에는 크게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했던 활동들이 연탄 나르기, 독거노인 거주지 개선(도배봉사) 같은 단순 노동에 국한되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자면, 도움을 주어야 하는 대상(피봉사자)들을 직접 접해 본 적이 없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가서 몸을 쓰고 고생하고 나면 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물론 할머님들이 비타 500이나 맥심커피같은 간식을 주시기도 하고, 점심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 때 뿐, 그분들과 내가 딱히 피봉사자와 봉사자 관계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웠다. 


사람 사는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집이 낡고 쥐가 드나들고 공동화장실을 쓸 수도 있지 뭐,

별 생각 없이 봉사활동을 했다. 좋은 일을 했다는 마음보다는 육체노동에서 오는 보람을 더 크게 느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피봉사자들을 직접 접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나서 고민이 하나 생겼다. 

다운증후군, 자폐 등의 지체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물놀이를 가는 일이었다. 45인승 버스에 올라 워터파크에 가는 순간부터 또 같은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는 순간까지 꼬박 하루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했다. 


지체장애아를 그렇게 가까히서 만난 것이 처음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감정, 명확하게 완성되지 않는 문장, 화를 내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까지. 

그 아이(편의상 '한나'라고 칭하겠다)와 내가 의사소통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통제 불가능한 것들을 만났 을 때 처럼 나는 한나를 겁냈고, 한나가 다칠까봐, 한나가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할까봐 겁이 났다. 


모든 순간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대소변은 가릴 수 있는 거니?

튜브에서 놀고 싶다고? 물 속에서 놀아도 괜찮은 거니?

미끄럼틀이 타고 싶다고? 혹시라도 다치면 어떡하지?


나도 모르는 새에 안된다는 말, 위험하다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한나는 분명 놀고 싶었을 테고, 미끄럼틀과 튜브는 생각보다 안전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한나가 할 수 있는 있과 할 수 없는 일을 몰랐고 한나를 다루는 법도 전혀 몰랐다. 


내가 너를 도와준다는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골아 떨어진 한나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저 도와준다는 마음만으로 봉사활동을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 피봉사자와 함께 한다는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건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한 것처럼

봉사에도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생각하게 했던 조금은 불편했던 봉사활동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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