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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Jan 01. 2018

11. 여행지에서의 고독에 관하여

이코노미 석에 시달린 몸을 쉬일 정도로만 주어진 스탑오버 시간. 몸을 누이기 위해 공항 캡슐 호텔로 갔다. 세면대는 물을 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녹물을 뱉어냈다.

- 창문이 있는 방은 7달러가 더 비싼데 하시겠어요?
- 그 창문으로 제가 뭘 볼 수 있지요?
- 비행장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볼 수 있는 것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하얀 쇳덩어리지만 여행 첫날의 운치를 느끼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였다. 이 정도 사치는 부릴 수 있지.

옆방 여행객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얇은 벽으로 쌓인 방에 누워 나는 30분에 한 번씩 잠에서 깼다. 아니 처음부터 잠은 들지 않았으니 30분에 한 번씩 눈을 떴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얼룩진 천장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놓고 온 것들과 나에게 남은 것들을


회사원이던 나, 당신들의 친구이던 나, 선배이던 나, 후배이던 나.
내가 어느 때에 찾아가더라도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


이것들을 다 놓고 오니, 갑자기 기억에도 없던 최초의 탄생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누군가 나를 보고


너는 ㅇㅇ이야.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다면 이렇게 초라해지지는 않을 텐데

순간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여권을 만지작거렸다.
낯익은 이의 낯선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 지구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이야.

여행의 첫 번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Sheremetyevo International airport hotel, moscow, Russia,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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