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석에 시달린 몸을 쉬일 정도로만 주어진 스탑오버 시간. 몸을 누이기 위해 공항 캡슐 호텔로 갔다. 세면대는 물을 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녹물을 뱉어냈다.
- 창문이 있는 방은 7달러가 더 비싼데 하시겠어요?
- 그 창문으로 제가 뭘 볼 수 있지요?
- 비행장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볼 수 있는 것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하얀 쇳덩어리지만 여행 첫날의 운치를 느끼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였다. 이 정도 사치는 부릴 수 있지.
옆방 여행객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얇은 벽으로 쌓인 방에 누워 나는 30분에 한 번씩 잠에서 깼다. 아니 처음부터 잠은 들지 않았으니 30분에 한 번씩 눈을 떴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얼룩진 천장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놓고 온 것들과 나에게 남은 것들을
회사원이던 나, 당신들의 친구이던 나, 선배이던 나, 후배이던 나.
내가 어느 때에 찾아가더라도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
이것들을 다 놓고 오니, 갑자기 기억에도 없던 최초의 탄생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누군가 나를 보고
너는 ㅇㅇ이야.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다면 이렇게 초라해지지는 않을 텐데
순간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여권을 만지작거렸다.
낯익은 이의 낯선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 지구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이야.
여행의 첫 번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Sheremetyevo International airport hotel, moscow, Russia,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