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다고 다 얻을 수는 없겠지만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친구를 만났다. 여행자들의 우정이 그렇듯이, 길 위에서 만나서 길 위에서 헤어지며 서로의 인생에 잠깐의 교차만 남긴 채 각자의 길을 갈 줄 알았다. 허나 세상이 많이 좋아진 덕분인지, 아니면 잊히기에 그만큼 어려운 인연이었던지 어찌 되었든 우리는 다시 만났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는 겨울 패딩 안에서 도드라지게 눈에 띄었다.
걸으면서 만난 사이라 겉치레 없이, 멋부림 없이 우리는 소녀들처럼 깔깔거리며 핫도그와 떡볶이를 먹었다. 친구는 물집 잡힌 발가락이 아직도 못생겼다며 발가락을 자랑했고 우리는 서로의 기억을 맞추며 아주 쉽게 같이 걸었던 그 때로 돌아갔다.
아, 그 기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머리 위에서 웅웅 거리며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를 바라본 순간을,
구름 위에 있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안개 자욱한 길을 걸을 때 판쵸 위로 송골송골 맺히던 물방울을,
갑자기 찬물을 쏟아내는 샤워기에 놀라 언니! 언니! 하며 소리 질렀던 순간을,
길에서 만난 치매 노인이 혹여나 불편할까, 그의 뒤를 멀찌감치 따라다니며 담배와 사과를 대신 골라주던 기억을.
여행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좋은 음식, 멋진 음악, 사진에 담고 싶은 풍경처럼 많은 것들이 있지만
한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여행은 좋은 동행이 없다면 누릴 수 없었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