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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Jun 23. 2018

화가 나요

선생님 화가 너무 나요
오랜만에 찾아 간 심리 상담소에서 내가 처음 내 뱉은 말이다. 

맞다. 요즘 화가 너무 많이, 그러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자주 난다. 

방금도 자전거를 타고 오는 길에 왠 어르신이 훈계를 하시길래 나도 모르게 욱!했다. 
"자전거가 차도로 가야지 왜 인도로 다니면서 빵빵거리고 지랄이야??!!"
'아니 여긴 자전거 도로 라고요!' - 아..이건 내 마음의 소리다.


욱에는 욱으로.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오랫동안 남는 화는 제때 내뱉지 못한 화다. 

말했다가 해코지 당할까봐 무서워서, 말하려는 타이밍을 놓쳐서, 체면치레 하느라 등등의 이유로 내 몸 밖으로 나가지 못한 불씨들은 꺼지지 않고 내 몸 어딘가에 콕! 박혀 있다.



상담소에서 얘기한 일도 마찬가지다. 
지난 주 선배와 후배, 나까지 셋이서 가진 술자리에서 선배는 자기가 젊은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걸 자랑스레 떠들어댔다. 올해 수능을 보는 19살짜리 딸이 있는 분께서 20살 언저리의 여자들과 이야기하는 게 즐겁고 기쁘단다. 그래서 강남에 있는 어느 바에서 '예쁘신 분'들과 이야기 하는게 요즘의 낙이라나 뭐라나. 
앞에 있던 김치찜을 입에 쑤셔 넣고 싶어질 정도로 듣기 싫었다. 그걸 또 후배놈은 '그런데는 선배님들이 데려가 주셔야 갈수 있지요'하면서 아양을 떨고 있다. 2차로 '예쁘신 분'들을 만나러 갈 기세다. 듣기 싫다. 듣기 싫다. 

어휴...


'선배님 따님이 내년에 대학생 되서 그런데서 일한다고 하면 좋으시겠어요?'라고 할까 아니면 '방금 말씀의 뜻은 선배님께서 젊은 여자를 밝힌다는 거로 이해해도 될까요?'라고 할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중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주제는 넘어갔다. 

아, 화난다. 
불쑥불쑥 침범하는 기억 때문에 화가 가라앉지 않아요 선생님. 된장도 묵혀야 깊어진다는데 화도 그런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점점 그 농도가 짙어져요. 하니 선생님은 화를 '형체화'하라고 하신다. 

이 무슨 에네르기파 만드는 소리냐 하시겠지만 그 순서는 이렇다.

화가 나는 상황을 반복 재생 하지 말고 그 '화'의 에너지 자체에 주목한다. '밝히시는 분'에 대한 화는 머리 위쪽. 정수리 부근에 있었다. 화가 났던 상황을 생각할 때 그 부분이 유독 뜨거워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상황은 제쳐두고 그 '열 덩어리'를 살펴본다. 얼마나 큰지(정수리만 뜨거운지 관자놀이까지 퍼져 있는지), 딱딱한지 물컹한지, 만약 색이 있다면 무슨 색일 것인지. 하나 하나 생각하다 보니 '정수리에 있는 회색의 끈끈한 500원짜리 동전만한 화 덩어리'가 나타났다. 생긴것도 참 종양같이 생겼다. 고 생각하는 중에 선생님은 이걸 정수리에서 조금 떨어트려 보라고 하셨다. 아, 실패. 고작 조금 움직여 보았을 뿐이다. 

빌어먹을 종양 덩어리. 
아, 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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