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을 갔다.
지인에게 뭘 가져가야 하는지 물어보니 그냥 몸만 오라고 해서 내 몸과 같은 술 한병을 들고 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막히면 한 시간 조금 더.
작은 수돗가와 민트색 퀴퀴한 간이 화장실이 있는 어딘지 엉성한 캠핑장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먼저 도착한 캠핑족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동남아시아 리조트에서나 볼 법한 형형 색색한 해먹에서 빈둥대고 있는 사람들, 미국 영화에서 많이 본 트레일러가 듬성듬성 놓여 있고 한국에서 과연 쓰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던 캠핑카에 다들 빔 프로젝터로 영화 한 편씩 보는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하루 짜리 집일 뿐인데, 캠프에는 뭐 저리 많은 장식을 했는지 알록달록 가랜드에 알전구, '나의 것'이라는 징표처럼 이름을 붙여 놓은 자동차도 있었다.
캠핑장에 오면 문명을 잊고 야생으로 돌아가서 지낼 생각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기가 죽어 버렸다. 고기 구워먹고 라면 끓여먹는 단순한 저녁 식사를 생각했는데 고기는 숯불이라며 누군가 휴대용 난로 - 초등학교 교실 뒤에 있던 그 난로 - 를 꺼내는 순간엔 '난로가 트렁크에서 왜 나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 다음에 냉장고도 나오는건 아니겠지.
떠돌이로 사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이 들었다.
캠핑카 까진 아니더라도 수납력 갑인 스타렉스에 텐트 하나, 의자 하나, 흰 스크린에 빔 프로젝터 하나씩 실어 놓고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휭 하고 떠나야겠다. 그렇게 자주 떠나다 보면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기도 떠날 곳처럼 느껴지겠지. 이곳 저곳에 내 기억들을 묻히고 다니다 보면 어디를 가든 내가 있었던 기억이 군데군데 남아 있어 결국에는 온 세상이 내가 있었던 곳, 내가 있을 곳처럼 느껴지는 착각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떠나지 않아도 떠난 것처럼,
떠났어도 떠나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