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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May 01. 2016

3. 세계여행은 취업에 도움이 될까

진작 말했어야 하는 것을

이번 글은 취준생 후배님들을 타겟으로 하는 글이라 존댓말로...


아마 많은 세계 여행자들이 그렇겠지만, 저 또한 여행을 다녀온 뒤의 삶과 여행을 가기 전의 삶을 많이 비교합니다. 그만큼 9달의 여행이 제 인생에 크게 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귀국하고 얼마 되지 않은 날 저녁, 엄마가 갑자기 저에게 물으셨어요

"너 여행 다녀온 게 취업에 많이 유리하게 작용했니? 엄마 주변 사람들이 자꾸 물어보더라"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 번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세계여행이라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시기는 5학기를 마친 봄, 저는 그때 22살이었고 휴학을 한 채 국내 한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팀에 계시던 컨설턴트 언니가 그 전 해에 세계여행을 다녀오신 분이었어요. 그리고 그 언니의 동생분도 세계여행을 다녀오시고 성균관 대학교 앞에 작은 게스트 하우스를 꾸려서 운영하고 계셨어요. 두 분 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인생의 전환점으로 세계여행을 다녀오신 거였지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생활을 해 보고 싶었어요.

자연스럽게 주말마다 그 게스트 하우스에 놀러 가고 스텝으로 일 하면서 많은 여행자를 만나고, 또 언니와 오빠의 여행 얘기를 듣다 보니까 세계여행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저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생활을 해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게 내 인생에 큰 자산이 되든, 아니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추억이 되든 간에 멋진 일이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학생일 때가 아니면 그렇게 모험을 할 수 있는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함도 들었어요. 지금은 내가 가진 게 많지 않아서 잃을 것도 없지만, 나중에 직장이 생기고 가정이 생기면 내가 이렇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아마 이게 내 인생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


그래서 한 달 동안 태국을 여행해 보기로 했어요

인턴을 하면서 세계여행이 만만해졌다면, 인턴이 끝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내가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테스트해 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태국을 여행해 보기로 했어요. 중간에 보름짜리 워크캠프(국제 봉사활동)도 넣어서 약간의 안전장치도 마련했습니다. 쌩짜로 혼자 다니는 건 자신이 없었거든요. 어설프게나마 한 달짜리 여행으로 세계여행의 예행연습을 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떠난 태국 워크캠프에서도 세계여행 중인 분을 만났습니다. 저와 같은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계셨는데, 2주 동안 진행되는 봉사활동 동안 매일 빠짐없이 일기를 쓰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원래 그분 성격이었는지는 몰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시는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때 제 생각으로는, 그런 성격이나 습관도 모두 세계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생긴 것 같았어요. 엄청 멋있어 보였어요. 부럽기도 하고.


한 달짜리 여행으로 예행연습도 했겠다. 큰 문제만 없으면 혼자서 반년 이상 싸돌아 다니는 것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았어요. 이제 현실적으로 세계 여행 계획을 짤 시기입니다. 여행을 떠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내가 그것들을 준비할 수 있는지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해요.


여행을 다녀온 뒤에 밀려올 현실에 대한 압박도 있었고, 학교 생활은 어설프게 하면서 대외활동에만 관심 가지던 제가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 드려야 했습니다.

일단 돈.

언제나 중요하지만 여행에서는 더욱더 중요해집니다. 인턴을 시작하면서부터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인턴을 하면서 동시에 과외를 3개 정도 병행하고, 기타 학교에서 진행하던 자잘한 장학금이나 이전에 모아뒀던 돈을 합쳐서 얼추 예상 자금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글로 적으니까 참 별거 아닌 거 같은데, 당시에는 주말마다 16시간씩 과외하고, 장학금 받으려고 공부도 엄청 열심히 했어서 그 당시 저의 생활은 피폐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가능하기 어려운 게 여행이라, 일단 돈을 모은 다음에 거기에 맞춰서 루트를 정하는 식이었어요. 대충 4대륙을 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2000만 원 가까운 돈이 필요할 것이라는 식으로 목표치를 정해놓기는 했지만 거기에 집착하지는 않았습니다. 돈 떨어지면 집으로 오면 되니까요. 쉽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부모님의 허락.

돈을 모은 이유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어학연수라면 모를까, 생전 처음 가는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1년 가까이 나가 있겠다는데 선뜻 허락해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경제적인 지원은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고 돈을 모으는 것 이외에 부모님이 저를 믿을 수 있을 근거를 마련해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무지하게 했어요. 여행을 다녀온 뒤에 밀려올 현실에 대한 압박도 있었고, 학교 생활은 어설프게 하면서 대외활동에만 관심 가지던 제가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 드려야 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장학금이라는 걸 받았었네요. 학점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올릴 수 있었습니다. 공부는 손 놓고 있던 애가 장학금을 받아 오니까 부모님도 엄청 좋아하시는 눈치였어요. 제가 속으로 딴생각하는 건 알지도 못하신 채...


마지막으로 여행 계획.

먼저 책을 많이 읽었어요. 마침 다니던 학원 근처에 큰 서점이 있어서 틈날 때마다 여행 코너에서 어슬렁 거렸습니다. 대부분 자기자랑식의 에세이였지만 그 속에서도 얻을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시중에 있는 책들은 거의 한 번씩은 들취 봤던 것 같아요. (물론 제대로 읽지는 않았지만;). 봤던 책 중에는 다음에 있는 유명한 세계 여행자들의 카페 '5불당'에서 나온 <세계일주 바이블>, 좌충우돌하는 여행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 <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아는 분께서 추천해 주신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이 있어요.


'여행은 뭔가를 얻고 오는 게 아니라 뭔가를 버리고 오는 거더라'

다행히도 제 주변에는 장기여행을 해 보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분들의 말씀을 많이 듣기도 했지도 다들 한결같으셨어요. '여행은 뭔가를 얻고 오는 게 아니라 뭔가를 버리고 오는 거더라', '네가 힘들면 돌아와도 돼. 무리하지 마' '사람을 믿어, 그게 여행을 행복하게 해 줄 거야' 나중에 이 말들이 여행 중에 집에 돌아가고 싶은 순간에 저를 붙잡아 주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세계여행이 취직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를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봐주겠지?' '나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겠지?' 물론 이건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단순히 취직에 도움이 되려는 생각만으로 그 수많은 고독의 시간을 견딜 수는 없어요.


여행하면 진짜 외로워요. 친한 친구도 없고, 매일매일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해요. 좋게 말하니까 여행자인 거지, 떠돌이랑 진배없어요. 게다가 전 겁도 많아서 낯선 사람,환경에 저도 모르게 벽을 쌓아놓고 있었어요.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지, 나를 해코지하면 어쩌지, 그런 긴장감 때문에 여행을 하고 3달 동안은 4시간 이상 연속해서 잤던 적이 없을 정도였어요. 울기도 참 많이 울었어요. 울었던 얘기는 다음 기회에 길게 해드릴게요.


돌이켜보니 취업 시장에서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건 세계여행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렇게 제가 여행을 준비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지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뭘 포기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여행 준비를 하면서요.  세계여행은 자기소개서 쓸 수 있는 충분한 소재를 만들어 주지만, (여행 중의 에피소드, 혹은 여행 그 자체)

최종면접으로 올라가면 사실 별로 대단하게 보지 않아요. 저 말고 세계여행을 했던 지원자들도 많이 있거니와 기업은 세계여행으로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를 봅니다.


최종 면접을 보시는 분들은 50대 가까운 기업의 중역들이 대부분이에요.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에게는 한 달짜리 여행이든, 삼 년짜리 여행이든 다 똑같은 취급을 받아요. 오히려 공부 안 하고 놀러 다녔다고, 혹은 부모님 고생시키면서 다녔다고 나쁜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얻었는가'예요.

철저하게 output중심이에요. 면접이 그렇습니다.


지금, 세계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 중에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여행은 여행 그 자체로 즐길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평생 동안 나의 전 생애를 걸쳐 영향을 끼칠만한 대 사건이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되기에는 아깝지 않을까요?

23살에 떠난 세계여행은 내가 얼마나 어리고 멍청하고 화 잘 내고 다혈질이고 잘 울고 쪼잔하고 더위를 잘 먹고 잠이 많고 소심한 사람인지 알게 해 줬지만,  

반면에 의외로 긍정적이고, 침착하고, 아이들을 좋아하고, 생각보다 현지인들과 말을 잘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 알고, 마늘이랑 닭만 가지고 삼계탕을 끓여 먹을 수 있고, 바다를 사랑하고, 궂은일을 싫어하지 않는.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줬어요.


세계여행 간다고 취업에 도움되는 것도 아니고, 가지 않는다고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어떤 분의 말씀처럼, 여행은 무언가를 얻으려고 가는 게 아니라 버리고 오는 것이기 때문에요.

여행은 여행 그 자체로 즐길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어요.


@ Damascus, Sy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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