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쓴이 Aug 03. 2019

14.도미토리도 좋고 오션뷰 호텔도 좋다

나 휴가 짤렸다.

늦은 오후, 회사에서 뛰쳐나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쳤다. 젠장. 아 이런 젠장. 일정이 꼬여 버렸다. 같은 팀 동료의 병가가 연장되는 바람에 내가 빠지게 되면 대체 인력이 없어서 긴 휴가를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원래대로라면 다음주에 10일동안 몰타에 있어야 했다.


아아 나의 몰타

석양이 지는 지중해를 바라보며 그윽한 표정을 지으고 싶었는데


출발이 얼마 안남은 상태에서 취소를 하는 바람에

비행기 취소 수수료로 중국은 왕복할 수 잇는 금액을 토해냈다.


하루종일 우울해하는 내가 불쌍했는지, 팀장님의 배려로 이틀간의 짧은 휴가를 얻을 수 있었다. 

목금토일. 3박 4일 동안 어디를 갈지 아주 잠깐 고민한 다음, 마침 오늘 점심에 같이 밥을 먹은 언니가 얼마 전에 괌에 다녀왔다는 말이 떠올랐다..


괌의 영물 괌몬


그래, 괌이다. 괌. 


퇴근하는 길에 비행기표를 사고 거짓말처럼 괌에 갔다.


고백하자면, 휴양지 혹은 패키지 여행을 폄하하고 살았다. 20대의 나에게 여행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것, 그러니까 마치 그 나라사람인양 행동하고 경험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풀빌라에 드러누워 옵션 마사지나 받는 휴양지는 자본주의에 찌든 여행처럼 보였고, 유적지에 10씩만 머물면서 사진만 찍는 패키지는 인증샷 말고는 남는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휴양지와 패키지도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혈기 왕성한 대학생에게는 현지인들과의 만남이 진정한 여행이 될 수 있으나 일상에 지친 직장인에게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뿐이다. 직장인의 일상은 갑자기 떨어지는 보고서, 뜻밖의 야근 등 늘 새로운 자극의 연속이었던 탓일까. 용량초과된 내 마음은 쉬는 것을 원했다. 


급하게 정한 여행, 짧은 일정, 놀기 좋은 괌. 

이 3박자가 맞았던 이번 여행은 전에 없이 호사스럽게 보냈다. 


괌에 도착한 첫날 석양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호텔식 바베큐를 먹으면서 만수르의 기분을 느꼈다. 만수르 똥닦는 휴지값 정도도 안되는(아마?) 50달러짜리 식사였지만 항상 값싼 현지인 식당만 골라 다니던 나에게는 상상도 못한 일이없다.



아침에 호텔 로비로 오는 투어 밴을 타고 스노클링, 정글 투어를 한 다음 호텔에 돌아와 휴식한 다음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유서 깊은 유적지에서는 사진만 찍었고 현지인들과 담소를 나누지도 않았다. 로밍한 핸드폰으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실시간 으로 사진을 보내며 자랑했다. 


무거운 베낭도 없고, 도미토리에서 코 고는 낯선 여행자도 없이 몸과 마음을 온전히 쉬는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듯 살면서 내가 변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전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던 행동을 이해하게 될 때이다. 

나에게 이번 여행은 그 전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여행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3.수피 댄스(sufi whirling)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