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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Oct 23. 2020


나는 술 한잔에도 잠이 쏟아지는 사람이고 너는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 마시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내가 호기롭게 술을 한 번 마셔보겠노라 떵떵 거릴 때면 너는 나에게 30분 안에 침대로 들어갈 것이라며 놀려댔고 나는 약올라하다가 결국 병든 닭처럼 꾸벅거리며 침대로 들어가고는 했다.


나는 하루에 한 번도 겨우 씻는 사람이고 너는 하루에 3번은 거뜬히 씻는 사람이다. 늘 젖어있는 욕실 슬리퍼를 보면서 네가 얼마나 더 자주 씻을 수 있는지 놀라고는 했다.


서로 다른 생활습관을 가진 두 성인이 한 집에 사는 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실시간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놀라고 서로를 의아해하다가 결국에는 이불 속에서 발가락을 맞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희안하게도 서로의 다른 점을 많이 발견할수록 나는 너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의 행동이, 생각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점점 명확하게 알게 된다. 사람을 좋아한다는게 술을 좋아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이 된 것인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게 샤워를 자주 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게 된다.



너와 나의 다른 점들이 서로에 대해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 “너는 왜?” 로 시작해서 “그래서 그랬구나” 혹은 “그럴수도 있구나”로 갈라지는 생각의 흐름들이 모여서 내 머릿속에 너를 만든다.



틈이 있어야 씨앗이 들어갈 수 있다.


너와 나의 틈에서 꽃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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