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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Jun 14. 2019

우리의 아파트

올 해 5월 26일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날이다.


그 날은 우리가 이사할 신축 아파트를 처음으로 구경하는 날이었다. 입주자 사전 점검이라고도 불리는데,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자들을 불러 자기가 산 집이 제대로 지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아침부터 들뜬 엄마 아빠는 약속시간보다 한시간이나 먼저 새 아파트에 들어가서 신나 있었다. 




"이것봐 우리 집에서 한강이 보인다"

정말, 정말 가늘게 실처럼 한강이 보이기는 했다.


"우리 집에서 롯데월드 타워도 보이네?"

롯데월드 타워는 경기도에서도 보이는데


"집이 새거야!"

당연한 소리?!


작고 사소한 장점도 그 집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것처럼 느껴졌다. 새것이라면 지우개를 사도 기분이 좋기 마련이라 새! 아파트는 우리 가족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우리는 가구의 배치며 각자 방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 즐겁게 떠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첫 아파트는 14평에 방 하나 딸린 작은 집이었다. 그 집에서 5명이 북적이며 살았다. 원래는 안방이었던, 하나밖에 없는 방을 내가 독차지한것은 '공부방이 필요하다'는 명목 때문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생리를 시작한 시기와 겹친 것을 보아 부모님은 나름 나를 배려해 주셨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 있던 방은 문짝은 이상하게 맞지 않았다. 그래서 문을 닫으려면 쿵!소리가 날 정도로 힘차게 밀어야 했는데, 막 중학생이 된 나는 방 안에서 문 닫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았으므로 항상 곤욕스러웠다. 


문을 고치자고, 식물의 성기로 가득찬 내방 벽지며 누군가의 담배자국이 눌러붙어 있는 장판도 바꾸자고 떼를 썼지만 부모님은 그럴 때마다 "우리 집도 아닌데 뭐하러 돈을 쓰냐"고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뻑뻑한 문 하나 바꾸지 않고 남의 집에서 30년을 살았다.




머리가 조금 커서 전세/자가 의 개념을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늘 궁금했다. 왜 집을 사놓고, 그 집에서 살지 않는건지. 사다와 살다, 비슷하게 생긴 이 단어에는 얼마만큼의 간격이 있는 건지 


어른의 복잡한 사정이야 관심 밖이었던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야말로 '나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문짝과 벽지를 바꾸지 못하는게 항상 불만이었다. 살고 있는 사람은 나인데, 남의 집이란다. 그럼 우리 집은 어디에도 없는 걸까.


그렇게 지내온 우리 가족에게 새 아파트는 자유를 의미했다. 문짝도 바꿀 수 있고, 벽지, 장판, 원한다면 방을 둘로 쪼갤 수도 있었다. 사는 곳을 완전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는 난생 처음 가져 보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같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주변을 둘러 보니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마치 여기가 놀이동산이라도 된 것 같았다.




성인이 된 자녀들은 분가를 해서 계속 같이 지내지는 않겠지만 고생하면서 사신 우리 부모님이 반짝반짝했던 첫 날을 기억하며 여기서 여생을 보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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