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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Jun 09. 2021

수치심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

나의 감각으로 직접 자신과 세상을 만나는 황홀

나는 배움이란,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를
제대로 볼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우고 또한 익히다가 결국
자신을 그 바람결에 실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하늘을 날 수 있다.

학습은
어느 순간 이질적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배움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역사든 또는 과학이든
배움은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고 가슴에 안는 것이다.

낯선 소리, 낯선 얼굴, 낯선 삶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곧 학습의 즐거움이다.
나는 모든 배움을 삶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삶이 아니면
음악이 아니고 소설이 아니고 철학이 아니고 경영도 아니고
이윽고 삶도 아니다.
누구의 이야기가 되었든,
'우리가 결국 한 작품 속에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가능성'이라는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지적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구본형의 <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 중에서


저는 유난히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저를 오래 보아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언제 봐도 늘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고.

그토록 엄청났던 배움에 대한 열정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삶을 만드는 핵심적인 배움이란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 이거구나. 하는 감이 온 다음부터는

바로 이 '포용'에 대한 배움이

삶의 최우선순위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 자신이

점점 더 크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했건만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그것을 이루지 못한 상태는

조금도 달라지지가 않았습니다.

스스로가 답답하고 미워서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더 답답했던 것은

제가 이런 상태라는 것을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를 쓰더니 결국 너도 마찬가지잖아! 하는

조롱이 들려오는 듯 했거든요.


그때 만난 것이 오소희 작가의 글쓰기 수업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작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 꺼내놓으리라.


부끄러워 나조차 차마 눈길을 주지 않았던

내 안의 그것들까지 남김없이, 모조리.

그녀와 함께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직접 만난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녀는 책으로 이 모든 여정의 시작을 열어준 존재중 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리고 어휴~~,

진상 진상 그런 진상이 없었을 겁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멋진 척 우아한 척 하고 싶은 욕망으로

꾹꾹 쑤셔 숨겨놓았던 어둡고 찌질한 날 것

그대로의 저들이 맹렬히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순간도 제가 아닌 순간이 없었습니다.


이 아픈 해방감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날아오르고 싶다는 열망으로 늘 저 먼 곳만을 바라보며 허공에 매달려 바둥거리고 있던 제가

드디어 제 두발로 땅을 딛고 선 느낌이랄까요.


결론적으로 아주 멋진 선택이었습니다.

이제야 저의 현실을 갖게 되었거든요.

더 정확히 제 몸의 현실이요.


이제는 더 이상 저보다 더 멋져 보이는 그 누군가에게

감각을 의존하지 않을 수 있게 된거죠.

제 감각으로 직접 저 자신과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정말 황홀한 겁니다.

이렇게나 멋진 센서를 버려두고

남의 것을 기웃거리며 보낸 세월이 너무나 억울할 정도로요.


그렇다고 제가 결코 짧지 않았던 시행착오들을

후회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어떤 경험도 다 필요해 제게 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거든요.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그것들 역시

지금의 저를 만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했던 수련의 관문이었음을 몸으로 알아차리게 된 거죠.


그 관문들을 거칠 수 있었기에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배움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꼭 저를 닮은 '귀여운 존재'들에게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싶어진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겠지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삶을 통해 정말로 배우고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삶에서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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