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세계다.
그저 내적으로 감응하는 나침반 하나 달랑 들고 떠난다.
이때는 내 발자국이 곧 지도다.
완성될 수 없는 지도, 때때로 잘못된 지도, 방황과 위험이
도처에 숨어 있는 지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지적 탐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성의 뒤에 숨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나를 나아가게 하고
어떤 감정이 나를 휩싸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해준다.
학습은 온몸으로 이루어진다.
구본형의 <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 중에서
수련은 자신을 깨어나게 한 통찰을 삶을 관통하는 일반적인 질서로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130조개에 이르는 세포와 미생물이 공존/공생하는 몸이
어느 한 순간의 통찰로 완전히 달라질 리가 없습니다.
몸이 지금까지 만들어 온 습관과 연결은
매 순간순간 몸안의 모든 요소들이 최적의 상호작용을 한 결과일테니까요.
한 나라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좀 쉽습니다.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아무리 훌륭한 지혜를 바탕으로한 선정을 베푼다고 하더라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그 지혜가 적용되는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항과 갈등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일테구요.
물론 권력을 이용해 강압적인 방법으로 강요해 좀 더 빨리 정책이 실현되게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성공한 혁명은 인류사에 정말 단 한 케이스도 없었다는 것을요.
당연합니다.
부자연스러운 방법이니까요.
생명의 섭리에서 벗어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여기까지 왔다면 몸과 삶이라는 유기체를 어떻게 사랑해나가야 할지가 아주 분명해집니다.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다고요?
나를 방해하는 환경과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구요?
아무래도 나는 틀린 것 같다구요?
천만에요.
그건 모든 일이 아주 잘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더 깊이 '나를, 나의 몸을, 내 안의 백성들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일테니까요.
그런 사랑을 받아볼 기회를 얻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마음의 경계를 넓혀가다보면 삶의 매 순간이 축복이라는 말이 몸으로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비로소 나의 세계에 살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https://youtu.be/OISRq1fd-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