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생각 대신 자신의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외로움이란 바로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고 세상에 이미 알려진 상식적 삶에 질문을 퍼붓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은 고독을 만들고, 고독은 철학을 가짐으로써 위대한 생각으로 나아간다.
구본형의 < 깊은 인생 > 중에서
세상의 생각 대신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고독의 시기를 거칩니다.
저는 이런 과정이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이 치러내는 사춘기와 아주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냉정하고 살벌한 세상을 상대로 하는 '독립투쟁'을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비유하는 것이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 도 있습니다.
아이들이야 그러다 지쳐 돌아오면 언제든 따뜻하게 반겨줄 부모가 있지만
세상이 이미 어른인 우리에게 그런 자애를 베풀어 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볼까요?
한번도 부모가 정해준 틀 밖을 벗어나 보지 않고 커버린 아이가 있다면
그는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한번도 세상이 정해준 선택지 밖으로 벗어나볼 엄두를 내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요?
고유한 생명의 빛깔을 갖고 태어낸 존재들이
고유한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애씀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만큼요.
우리가 아이였던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그 때 우리는 왜 그리도 철없이 비판하고 반항했던가요?
(나는 '사춘기'를 모르고 컸다고 말하시는 꼭 저를 닮은 당신은 대체 왜 그러셨나요?
실은 그것 역시 부모에 대한 또 다른 의미의 저항은 아니었던가요?)
아마 그렇지 않고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마치 작아져버린 옷처럼 부모의 세상에서
더이상 편안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겁니다.
맞습니다.
세상은 부모가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한 사춘기를 치뤄낼 때는 어린 시절보다 몇 배는 더 비장해져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