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의 숨겨진 목적
검은 때를 벗어 흰빛을 되찾은 소처럼
매일 자신을 들여다보라.
당신이 왜 변화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라.
슬픔이 있다면 적어라.
또 기쁨이 있다면 그것도 놓치지 말라.
바라지 않는 것을 해야만 한다면 왜 그런지 생각해보아라.
후회가 있고 통한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원망이 있고 억울한 것이 또한 인생이다.
그러나 도움이 있고 정이 있고 애정이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늘 자신이 유일무이한 삶을 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마음이 깨어 있는 한,
그리고 처음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저항은 당신을 굴복시킬 수 없다.
욕망이 흐르는 대로 마음의 길을 따라 껍데기를 벗고 그렇게 가라.
- 구본형의 <낯선 곳에서의 아침> 중에서
결핍은 변화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결핍으로 인한 감정에너지가
우리를 끝내 시작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에너지는 강력하지만, 다루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고삐풀린 망아지를 연상하면 감이 옵니다.
폭발적인 에너지로 고삐를 풀고 마굿간을 뛰쳐나간 망아지가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는 힘듭니다.
여기에 당황한 주인이 고삐를 다시 붙들기 위해 망아지를 자극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해야 집나간 망아지를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요?
아니 꼭 집이 아니더라도 말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한 그곳으로 함께 갈 수 있을까요?
불교의 선종 전통에서는 바로 이 과정을 심우도라는 선화로 표현해두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기르던 말이 아니라 야생소를 길들이는 이야기이긴하지만요.
저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조차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진 현대인들을 위해
본성에 어긋나는 억압에 못견딘 소가 우리를 뛰쳐나가는 그림 한장이 추가되어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곤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함께 하는 이 모험의 시작은 억압된 욕망의 분출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엔 갑갑한 울타리를 빠져나왔다는 해방감만으로 신세계를 맞은 듯 황홀해집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어김없이 곧 당황스러워지고 맙니다.
거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좋을 것 같았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익숙한 안전망조차 사라진 그곳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가고 싶은지도 막막한 채로 풍찬노숙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우도가 우리에게 인사이트를 주는 것은 바로 이 시점부터 입니다.
이제 다시 떠나온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우리를 이끌었던 욕망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새로운 여정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욕망의 발자국을 조심스레 따라가다보면
놀랍게도 심우도의 장면을 한장한장 현실에서 만나게 됩니다.
물론 이리 말하는 저도 이 모든 장면을 다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 지도 위를 걷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고 나니
정처없이 뭘 찾는지도 모르고 헤맬때보다는
한결 차분하게 지금 여기 내게 주어진 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결핍의 해소를 위해 모험에 나섰지만,
이 모험의 진짜 목적은 결핍감의 본질인 다양한 욕망을 살피고 이 욕망과 뒤엉켜있는 두려움들을 정화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그리하여 검은 때를 벗어 흰빛을 되찾은 소처럼
군더더기를 덜어낸 욕망의 본질을 되찾아 그 욕망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보는 것이겠구나.
그러다보면 또 새롭게 만나는 국면이 있겠구나.
이번 생 심우도의 어디까지를 체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지금 여기 내 눈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일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일에 충실한 것만으로 더 할 나위 없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미 만들어낸 변화를 누리는 것만으로 오늘 하루가 짧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