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두 얼굴과 마주치는 축복
피할 수 없는 갈등 너머에서 기다리는 것들
이중성을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이미 이중적이다.
외부에 존재하는 이중성을 다루는 데
자기 안의 이중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춤추는 하나의 별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카오스를 품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안의 모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 구본형의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중에서
나는 다 아는 내 안의 이야기를 굳이 꺼내 글로 옮겨 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의심을 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썼던 것은 쓰고 나면 숨이 쉬어졌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던 가슴 속 이야기를
세상에 오직 나만 열어볼 수 있는 비밀파일에 쏟아내고 나면
마치 시원하게 볼 일을 본 듯 홀가분해지곤 했습니다.
편안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거죠.
이것만으로도 글쓰기는 제게 충분히 의미있는 활동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무 맥락도 없고 두서도 없어 쓴 저말고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그 글을
다시 읽어볼 마음을 먹게 된 계기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온 몸의 잔털이 일제히 일어설 만큼 소름이 돋았던 감각적 기억만은 선명합니다.
대체 이것이 같은 존재가 쓴 이야기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리 진지하게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내 인생의 가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이 경험은
한동안 저를 대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아무 의심없이 미워하던 그들이 자꾸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한동안 너무나 힘들어 무엇이든 시작하지 않을 수 없던
그 전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습니다.
그래서 제 안의 이중성을 다뤄내야했던 그 시간을 후회하느냐구요?
그럴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