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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Feb 14. 2022

삶의 유일한 목적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체험하는 것


우리는 마음속에서 만난다.
오직 그곳에서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같은 곳에서 서로 뒹굴지만 마음으로 만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이승과 저승이 갈렸건만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다만 마음의 조화일 뿐이다.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 구본형의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중에서


'마음'이라는 말처럼 다양하게 쓰이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마음 가는대로' 살기를 바라여 용기를 내었지만

막상 그 '마음'이 가자는 곳이 어딘지 몰라 막막해하던 시간이 깁니다.


한 순간에도 여러 마음이 각자의 주장을 하는 일은 너무나 흔하게 일어납니다.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내 마음 나도 모르겠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을 밖에요. 

차라리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속편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인 노예로 살아갑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는 감옥에서 수 십년을 보내고야 가석방되어 감옥을 벗어난 노인 브룩스가 나옵니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별안간 찾아온 자유는 그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자유인에게 매 순간 주어지는 선택의 기회는 그에게 재앙에 다름이 아닙니다.

화장실을 가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조차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편한 잠자리에서조차 악몽에 시달립니다.

결국 그는 평생을 갈망하던 그 자유를 스스로를 죽이는 선택을 하는데 쓰고 맙니다.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원망스럽다가,

막상 내 맘대로 할 수 있게 되어서도 그 자유를 원망하다 끝나는 삶이라니.

그게 삶의 전부라면 너무나 가엽겠지요?


쇼생크 탈출에는 브룩스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팀 로빈슨이 분한 앤디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지만, 감옥의 룰에 삶을 위임하지 않습니다.

그라고 왜 억울하지 않고,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하나 살펴 그 마음들이 모두 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명료해진 그 마음을 따라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내내 한결같기만 했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결국 또 다른 빛깔의 마음 안에서도 역시 같은 열망을 찾아내고

또 다시 일어나 하던 일을 계속해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감쪽같이 탈옥에 성공하고,

미리 차곡차곡 준비해둔 새 삶에 멋지게 안착합니다.

이 뿐 아니죠.

자칫 브룩스 노인의 뒤를 따를 수 있었을 동료 레드에게도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선물합니다.

그에게 새 삶을 선물받은 사람이 어찌 레드 한 사람 뿐이었을까요?


한 때는 특별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이례적인 모색 정도로 여겨졌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이젠 너도 나도 한번쯤은 체험해보고 싶어하는 대중적인 상품이 되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조직의 룰에 삶을 의지할 수 없는 존재들이 많아진

사회구조의 변화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겁니다.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체험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믿고 있는 저로서는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탈옥부터 하려는 분들을 보면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익숙치 않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두려움과 통증으로 해석되는 법이니까요.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통증에 압도당하는 것을 전문용어로 '트라우마'라고 하지요?

인간 보편의 과제인 '내 마음을 알아가는 모험'을 트라우마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피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는 것이 상책이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면 

가능한 자신에게 가장 친절하고 편안한 방법을 선택해야겠지요?


그래서 저는 예방접종식 접근을 권합니다.

현재의 일상을 지켜가는 가운데 부담없는 방법으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앤디의 친구 레드의 방식으로요.

 (앤디는 어쩐지 넘사벽이라...^^;;)


그러다보면 조금씩 내 마음과 친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 안에 그 어떤 마음도 이유없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함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재단하는 오류를 줄여갈 수 있게 됩니다.

그저 귀기울이고, 또 귀기울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만날 수 있던 딱 그만큼 타인의 마음과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이 만나는 공간만큼 나의 세상도 넓어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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