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과 결혼을 왜 했냐고? 참 어려운 질문이다. 만약 당신과 결혼을 안 했어도 지금쯤은 누군가와 분명 결혼은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행복하리라고 장담은 못 하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빨리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여자를 소개시켜주면 특별히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으면 꼭 만나보았다. 그러나 직장생활이 바쁘고 하다보니까 소개팅을 자주는 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귀찮다는 생각도 들고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나, 어디에서 식사를 하나 고민해야 된다는 것이 싫을 때도 있었다.
때로는 예쁜 여자가 나오기도 하고 정말 1분도 같이 있기 싫은 여자가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저마다 외모나 집안, 직장 등 차이점이 있지만 공통점은 모두 자존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좋은데서 좋은 것 먹으려고 하고 자신들의 좋은 부분을 조금이라도 더 부풀려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수많은 여자 만나봐야 다 소용 없고 정말 괜찮다 싶은 여자를 만나면 베팅을 잘 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괜히 소개시켜 주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혹은 그 여자 자존심 세워주려고 쓸데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아까운 시간과 역량을 낭비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불필요한 탐색전을 펼치지 말고 사귈 의향이 있는지 적절한 시점에 타진하고, 상대편에서 사귈 의향이 별로 없는 것 같으면 깨끗이 포기하는 것이다. 거짓말 안보태고 이러한 마음을 먹고 만난 첫상대가 당신이다.
우리는 2003년 11월 7일 3시반에 코엑스에서 만났다. 친한 직장 동료가 소개시켜줘서 만났는데, 소개팅이라는게 그렇듯이 당신에 대한 최소한의 것(학력, 직장 정도)만 아는 상태에서 나갔다. 구체적으로 외모나 성격이 어떤지, 가족관계가 어떤지, 취미가 어떤지 등등 알아내는 것은 당사자들의 몫이다. 물론 외모나 성격에 대해 주선하는 사람은 예쁘고 귀엽게 생긴데다 성격도 대개 좋다고 얘기한다. 소개시켜 주는 사람치고 ‘못 생기고 성격 더럽지만 꼭 만나봐’하면서 소개시켜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나가기 전에 외모도 괜찮고 성격도 괜찮고 뭐 그런 식으로 듣고 나갔다.
당신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베팅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베팅의 목적은 당연히 궁극적으로 결혼이다. 만나면서 내가 생각해 오던 배우자의 이미지와 대체로 맞아 떨어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궁극적으로 ‘결혼’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결혼’이라는 것은 여자를 만나 같이 살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 한사람의 成人으로서 거듭나는 것이다. 총각이나 처녀라면 뭔가 좀 인간적으로 한 단계 낮아 보인다는 느낌이 든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해야 뭔가 완전한 한사람의 인간으로 보인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결혼하기 전 이러한 것을 매우 중시했던 것 같다.
배우자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결혼을 하고 조금씩 세월이 흐르면서였다. 배우자는 나의 행동, 생각, 나아갈 길, 고민 등 모든 것을 마음 편하게 공유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배우자를 통해서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아파테이아'와 '아타락시아'를 느끼면서 키레네 학파가 주장하는 쾌락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결혼은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다. 나는 당신을 통해 이러한 결혼의 중요함을 실감해도고 있다. 그래서 행복하고, 당신과의 결혼 목적에 이것을 주된 것으로 자신있게 이야기 할 것이다.
보낸사람 : 미* 11.08.31 9:29
당신의 편지를 읽고 나니 우리는 참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때 ‘결혼’에 대해 충분한 공부없이 너무 성급하게 결혼을 했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더 힘든 것은 아니었나 후회를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정말 부족했던 것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를 소화할 수 있는 경험치였었던 것 같아. 그러니 결국 우리가 결혼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학교는 ‘결혼’ 자체였던 셈이지.
근데 당신 언제 철학공부는 이렇게 한 거야. 며칠 전 나와 대화를 나누려면 내가 읽은 철학책을 다 봐야하는 거냐고 투덜대더니. 정말 며칠 사이에 그 두꺼운 책들을 다 읽기라도 한거야. ㅋㅋ 근데 말야. 솔직히 쪼꼼 어렵긴 하다. 그니까 당신은 나를 통해 마음의 평화와 사는 재미를 동시에 느끼고 있어서 행복하다는 얘기인 거지? ^^;;
나도 마찬가지야. 특히 당신이 내게 주는 ‘안정감’은 내 존재의 기반이라고 말해도 좋을 거야. ‘사는 재미’에 관해서는 말야. 할 말이 좀 많은데...당신은 언제 재미를 느껴? 나의 경우에는 ‘마음이 통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이야기가 통한다’는 의미겠지. 당신이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결혼전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빨리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던 직장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거야. 당신이 내게 보여준 공감적 태도에서 나는 당신이라면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데 말야. 이쯤에서 솔직히 고백하는 게 좋겠지? 언젠가부터 당신에게 마음을 털어놓기가 어려워지고 말았던 것 같아. 언젠가가 언제였냐구? 음..그니까 그게. 당신과 내가 결혼이라는 ‘설정’에 함께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말하면 삐질거지?
내가 첫 편지에서 말했지? 결혼 전에는 내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것만 같았던 당신이 막상 결혼을 하고 났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거야. 내 이야기라면 무슨 이야기를 하던 재미있게 들어주던 당신이 결혼 후에 내게 하는 말이라곤 ‘불은 껐냐? 문은 닫았냐? 너는 여자가 왜 그러냐? 기본이 안 되어 있다’ 등등 온통 잔소리뿐이었어. 그런 당신의 말에 내 생각을 덧붙이는 순간 바로 싸움이 되고 말았지. 도무지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당신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줄 때는 오로지 당신의 생각을 지지할 때 뿐이었으니까. 그때 내가 느낀 좌절감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당신과 아직까지 살고 있었냐구? 그러니까 그게. 당신의 존재가 내게 주는 그 안정감이 이 모든 결핍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대단히 컸다면 설명이 될까?
또 묻고 싶겠지? 대화가 안 통한다는 사람에게 뭐하러 이런 편지를 쓰고 있느냐고? 일단 흥분을 가라 앉혔으면 좋겠어.
젊은 남자와 여자들은 사실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파악하고 문제가 생기면 남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이는 심리학 용어로 말하자면 자신의 잘못과 어려움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한다고 말한다. 이런 투사는 실은 매우 적합하고 적절한 행동이다. 만약 젊은이들이 타인에게 <투사>를 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세상에 나가 위험을 무릅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알렌 치넨(Allen B. Chinen)의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 중에서
결혼이 인간관계의 엄청난 도전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혼전에는 투사의 대상은 맘놓고 증오하고 경멸하며 원하는 만큼의 거리를 둘 수 있다. 혹 직장 상사나 동료처럼 물리적으로 멀리할 수 없는 경우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그들을 마음으로 ‘격리’시킬 수가 있다. 언제나 나는 그들의 사악함에 물들지 않고 산뜻한 인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결혼을 하게 되면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타인과의 접면이 넓어진다. 이렇게 접촉면이 넓어지면 마찰도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자연스럽게 이런 불편함의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다시 말해 투사할 타인이 필요해지는데...결혼이라는 1대 1 관계의 테두리 안에서 나 말고 남아있는 사람은 어이없게도 평생을 한결같이 사랑하리라 다짐했던 남편 뿐이다. 너무나 괜찮은 나와 이런 내가 심사숙고해서 선택한 남편이 함께 하는데 신기하게도 불편한 문제는 끊이지를 않는다. 젊은 아내는 이 납득할 수 없는 현상을 ‘멋진 남편’을 포기함으로써 이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남편을 악당으로 모는데 성공했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해본 사람은 다 안다. 결혼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은 책임과 의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따라서 아내가 가련하고 불쌍한 피해자로서의 역할을 고수하면서 자연스러운 세월의 중압을 남편에게 전가하는 한 결혼은 부부 모두에게 점점 더 끔찍한 굴레가 되고 만다.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문제는 계속해서 쌓여가니 삶은 그야말로 지옥된다.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중요한 깨달음 중의 하난데. 내가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의 대화가 단절된 원인이 당신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야. 당신이 나를 자기의 틀에다가 끼워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답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은 내 틀에다 당신을 끼워 맞추려고 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는 반성을 했던 거지.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작년 가을쯤이었어. 내가 말했지? 작년 9월부터 ‘엄마의 시간통장’이라는 이름의 ‘가정경영일지’를 쓰고 있다구. 일지의 항목중 하나가 ‘부부대화록’인데 쓰다 보니 부부의 대화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엄마, 초콜렛은?”
훈이가 일어나자마자 초콜렛을 찾는다.
“안 돼!! 빨리 나와!”
남편이 퉁명스럽게 대신 대답했다.
“훈이, 어제 밤에 초콜렛먹고 싶은 거 참고 잤지? 어젠 치카해버려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 먹기로 약속했지?” 남편 들으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초콜렛을 꺼냈다.
“너무 많이 주지 말고 딱 세칸만 줘!”
갑자기 빈정이 확 상했다.
“알았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짜증이 확 실렸다.
“나 갈래! 훈이는 니가 보든지 마음대로 해!”
나의 짜증이 남편의 간장종지를 넘치게 했다는 신호였다. 일단 마음을 추스르고 남편의 소매단을 잡았다.
“에이! 왜 그래! 훈아! 어서 엄마 어부하고 어린이집 가자!”
그렇게 가까스로 부자를 차에 태우는데 성공했지만 차 문 닫는 찰칵 소리와 함께 참았던 감정이 얼굴로 쏟아져내렸다. 감정의 제목은 ‘차가운 분노’정도였던 것 같다. 창문을 열어 나의 표정을 살핀 남편은 어색한 인사를 남긴 채 사라졌다.
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다. 내버려두면 ‘저런 쫌생이 간장종지와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 언저리까지 가곤 하는 상당 위험스런 상태였다. 그때 문득 5분도 안 되는 짧은 대화속에 부부생활의 히스토리가 그대로 응축되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대체 나는 왜? 하찮은 초콜렛과 결혼생활의 퀄리티를 연결시키는 어이없는 사고를 하게 되었는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정리해보자!
<아내 버전>
훈 : 엄마, 초콜렛은?
남편 : 안돼!! 빨리 나와! (3 ▲ 3)
* 도대체 원칙이라곤 없다. 자기가 무슨 전제군주도 아니구 어제 같이 약속해놓고 별안간 아침에 안 된다는 이유가 뭐야? 더 어이없는 것은 자신이 나름 원칙적인 인간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그 원칙이 순간순간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쯤은 결혼하고 삼개월도 채 되지 않는 시점에 이미 뽀록 나버렸다는 걸 본인만 모른다. 그 원칙없는 고집이 얼마나 주위사람을 피곤하게 하는지 그도 알아야 한다. 근본적인 수정이 없으면 미래는 한도 끝도 없이 블랙에 가깝다.
나 : 훈이, 어제 밤에 초콜렛먹고 싶은 거 참고 잤지? 어젠 치카해버려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 먹기로 약속했지?
남편 : 너무 많이 주지 말고 딱 세칸만 줘! (▲ 3, Total 6)
* 어이가 없다. 그럼 내가 아침부터 도마만한 초콜렛덩어리를 통째로 주기라도 한단 말인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줄 것을 마치 자기가 관리하지 않으면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는 듯한 어조다. 우낀다. 저나 잘하지.
나 : 알았어~!! (5를 넘어가면 감정이 외부로 표현되기 시작한다.)
남편 : 나 갈래! 훈이는 니가 보든지 마음대로 해!(▲ 100, Total 106)
* 비겁하다. 그걸 협박이라고 한단 말이냐?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할 시간을 확보해야하는 내 약점을 이용한 정면공격이란 말이지! 당신 인격의 저급함에 할 말을 잃는다. 그게 그대의 살아가는 방식이란 말이지!! 여기서 갑자기 결혼생활의 회의가 밀려온다. 내가 이런 인격체랑 살고 있단 말이지. 좌절! 그 자체! 게다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달에도 무슨 일인가에 삐져서 아이를 놓고 갔다. 그날 내게 한 사과는 다 뭐였단 말인가? 이건 의지의 영역이 아닐지도 모른다. 유전자의 영역이라면 개선의 여지도 없다는 얘기. 아~! 내 인생이여!! (하지만 여기서 정면대응은 곤란하다. 부모가 싸우면 어린이집에 빠져도 된다는 생각을 만들어줄 순 없다.)
나 : 에이! 왜 그래! (남편의 소매단을 비굴하게 붙들고) 훈아! 어서 엄마 어부하고 어린이집 가자!” (▼ 101 Total 5)
* 의지의 힘으로 101 쿨 다운, 그러나 5의 영향으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찰칵! 차문 닫히는 소리 (▲ 110, Total 115)
* 문소리와 함께 의지력도 해제되어 115 게이지의 엄청난 분노가 온몸으로 표현되고 만다
<남편 버전>
훈 : 엄마, 초콜렛은?
나 : 안돼!! 빨리 나와!
* 아침부터 아이에게 초콜렛을 줄 수는 없다. 어제 밤 약속을 하긴 했지만 그건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아이에게 한 말을 다 지킬 순 없다. 아이를 위해 부모는 어쩔 수 없는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한다.
아내 : 훈이, 어제 밤에 초콜렛먹고 싶은 거 참고 잤지? 어젠 치카해버려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 먹기로 약속했지?(5 ▲ 5)
* 이 집안에서 가장의 권위는 사라진지 오래다. 내가 어련히 알아서 했을진데, 여기에 아내가 토를 단다. 한 두번이 아니다. 아내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이건 기강의 문제다. 약속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한지, 건강한 식생활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남편이 결정하면 고분고분 따라주는 맛도 있고 해야지. 진짜 살맛 안난다.
나 : 너무 많이 주지 말고 딱 세칸만 줘!
* 그래, 내가 져준다. 타협하기로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는 걸 알려야겠다. 몸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만 주라고 말하는 정도가 적당하겠다.
아내 : 알았어~!! (▲ 5, Total 10)
* 내가 뭘 잘 못했다고 아침부터 짜증인지 모르겠다. 진짜 내가 돈벌어다주는 기계도 아니고. 자기는 하루종일 하고 싶은 일 다하면서 내가 조금만 잘 못해도 막 잡아먹으려고 들고! 이렇게 되면 훈이가 날 뭘로 보겠어! 더러워서!!
나 : 나 갈래! 훈이는 니가 보든지 마음대로 해!
* 하지만 내가 쓸 무기라곤...쩝..내가 생각해봐도 좀 쪼잔하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당장 권위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아내 : 에이! 왜 그래! (내 소매단을 잡으며) 훈아! 어서 엄마 어부하고 어린이집 가자!”
* 역시, 강하게 나가니 금방 꼬리를 내린다. 찰칵! 차문 닫히는 소리. 싸늘한 아내의 표정 (▼ 20, Total -10)
* 아무래도 내가 실수한 것 같다. 아내의 저런 표정은 정말 무섭다. 어쩌지? 뭘 어떻게 해야 화를 풀 수 있을까?
당신을 보내고 글을 통해 우리의 대화를 되새기고 즈음 당신에게 전화가 걸려왔었지. 미안하다고. 당신의 화해신청에 “집안의 리더인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싶지 않은 아내는 없어. 그래야 제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 하지만 그게 의지만으로 되는 일일까? 존경심을 갉아 먹는 건 리더 자신이야. 제발 애써 올려놓은 존경심을 스스로 갉아내진 말아줘.”라며 퉁명스러운 훈계를 하고 말았지만 그 순간 당신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 나 역시도 이 분쟁에 절반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