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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차마 전하지도 못하고 품어 삭이지도 못한 그 마음들의 행방

by 아난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당신의 마지막 편지를 받고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어.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진짜 이유가 뭘까? 이미 당신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저런 그럴듯한 이유를 들었지. 내가 찾은 새로운 세상을 당신과 공유하고 싶다. 관계를 지켜갈 수 있는 둘만의 언어를 만들고 싶다. 당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 기타 등등. 그런데 정말 그게 다였을까?


답장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좋다고 맘껏 쿨한 척했지만 실은 마음이 상했던 거야.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도대체 뭐야? 지금 얼마나 긴박한 상황인지 아직도 감을 못 잡은 거야?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여전히 모르는 거야? 눌러 놓았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기껏 첫삽을 뜬 우리들만의 채널만들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최대한 우아한 표현을 쓰려고 노력했던 건데, 설마 그 안에 담긴 내 절박한 S.O.S 신호를 못 알아차린 거냐구...’ 지난 2주 당신과 주고 받은 편지를 읽고 또 읽었어.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어제 저녁에 다려진 와이셔츠 없다고 말했는데 아직도 없네?”

“나 어제 아파서 힘들어하는 거 봤잖아.”

“어제 내내 아팠던 건 아니잖아! 하루종일 뭐하고...”


오늘 아침 당신과 내가 나눈 대화.


50페이지가 넘는 긴 편지교환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섭섭하고 화가 나서 눈물이 다 나더라. 당신을 보내고 한참을 씩씩거리며 앉아 있다가 깨달았지. 내가 당신에게 정말 하고 싶고, 또 해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진짜 이유를.


긴 이야기가 될 거야. 게다가 이젠 더 이상 당신의 기분을 맞추느라 해야 할 이야기를 주워담지 않을거고. 이제 알겠어. 내 문제가 무언지. 필요하다면 단호하게 주장할 줄도 알아야하고, 큰소리가 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거였어. 이 글을 당신이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끝까지 천천히 읽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어.


물론 당신이 내 이야기에 100% 동의할 것이라곤 생각 안 해. 나 나름대로는 당신의 입장까지도 충분히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난 당신이 될 수 없는 거니까. 그래서 더욱더 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네. 내 생각이 뭔지가 분명해야 당신과의 차이가 뭔지도 명확해질테고, 또 그 차이를 어떻게 극복 혹은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도 구할 수 있게 될테니까.


당신 : 어제 저녁에 다려진 와이셔츠 없다고 말했는데 아직도 없네?

나 : 나 어제 아파서 힘들어하는 거 봤잖아.

(속마음 : 내가 당신 엄마야? 나는 우리 애들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을 것 같아. 내가 언제 당신한테 내 옷 안 챙겨 놨다고 화낸 적 있어? 밖에서 일하는 사람을 위해 집에 있는 사람이 그것도 못 해주냐구?

물론 해줄 수도 있어.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써 왔구.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하고 ‘싶어서’지 ‘해야 했’기 때문은 아니야. 해주는 게 당연하고 안 하면 욕먹어야 하는 그런 항목이 아니라구. 몸이 안 좋아서 힘들어하는데 자고 있는 나를 굳이 깨워 와이셔츠 없다고 말하는 건 뭐야. 내가 벌떡 일어나 와이셔츠를 다리기를 바라기라도 했던 거야? 와이셔츠 없는 것 알았으면 다려 입으면 되지. 왜 짜증을 내는데? 내가 당신 몸종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거야?)

당신 : 어제 내내 아팠던 건 아니잖아! 하루 종일 뭐하고...

나 : ....

(속마음 : 그래, 아침부터 아팠던 건 아니야. 어제 뭐했냐구? 집안 정리하고, 공과금 내고, 어머님 아버님 콘서트 예약하고, 무슨 포인트 카든가 등록하고 났더니 오전 다 갔더라. 그리고 책쓰기에 필요한 자료 제본한 것 찾아서 어린이집에 애들 데리러 갔다 왔어.

훈이 수업하는 동안 영이랑 어머님 댁에 있다가 훈이 수업 끝날 무렵에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 그래서 잠깐 누워 있다가 당신 먹을 밥해서 앉혀놓고 8시 10분에 애들 데리러 나가는 거 당신도 봤지? 20분 뒤부터 수업한다 길래 애들 찾아서 바로 안 데려오고 놀이터 들러서 한참 더 놀아주다 들어 왔구. 나 할 만큼 했어. 당신에게 욕먹을 이유 없다고 생각해.)


당신이 힘든 거 나도 알아. 회사 다니며 공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래서 항상 고마워하고 있고. 성실하게 자기 몫을 챙기는 당신이 자랑스러워. 근데 당신은 나를 여전히 못 마땅해하고 못 미더워하는 것 같아 너무 섭섭하고 속상하다. 나 지금도 너무 힘든데 뭘 얼마나 더 노력하고 애써야 하는 거야?


집에서 경제적 역할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 정도는 베풀 수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마음을 다스려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선 여전히 남아있는 ‘억울함’까지 부정할 수는 없겠다. 내가 서둘러 복직을 하려는 것도 이 복병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Q. 팀활동을 할 때 특히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기여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해보세요. 반대로 팀활동을 할 때, 자신이 기여하는 바가 적다고 여겨질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도요.

솔직히 화가 나겠죠. 돌이켜보면 제 인간관계 분쟁의 대부분이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저의 기여가 ‘즐겁다’의 레벨을 넘어가면 폭발적으로 분노하기도 했구요. 제가 어떤 팀에 들어갔다면 일단 1/n의 기여는 당연하구요. 이 정도에서는 남이 어떻게 하든 별 관심 없습니다. 문제는 1/n+α가 될 때인데요. 제 원칙은 ‘α는 그 자체가 기쁨인 수준을 넘지 않는다’입니다.

제가 그렇게나 희생적인 인격체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이죠. 단, 그 자체가 기쁘다면 그걸로 모든 보상을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고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렇게 원칙을 정해놓고 나니 팀을 구성할 때 신중해지더라구요. 최악의 경우 모두의 역할을 혼자 감당하게 되더라도 가치 있는 일이냐? 혹은 그들의 몫을 완전히 다 뒤집어쓰게 되더라도 꼭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냐? 둘 중의 하나만 ok이면 갑니다.

물론 그렇게 선택한 사람들과 구성한 팀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지는 않더라구요.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찬찬히 생각해보면 이해되는 상황이 많아요. 그래도 억울하면 솔직히 ‘억울하다’고 말해요. 그런데 이야기하다보면 대게는 내게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들도 뭔가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놀래요.

반대의 경우는... 오히려 이 경우가 너무 속상하죠. 성격상 이런 경우는 참 드물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이번에도 솔직히 사정을 말합니다. 정말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요. 그런데 이렇게 미안해지면 어떻게든 보상을 하려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하기 때문에 정말 너무 힘들어져요. 스스로 너무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거의 안 생기죠.


2년 전 연구원에 지원하기 위해 썼던 응시원서중의 한 부분이야. 스스로에 대한 탐색을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쓴 글이라 많이 허술하지만 앞서 말한 ‘억울함’에 대한 설명을 위해선 더 없이 적합한 자료라고 생각해서 갖고 왔어.


직장에 다닐 땐 몰랐어. 가정이 이렇게나 많은 기능을 가진 조직인지. 커리어우먼이라는 허울을 쓰고 일터와 가정 사이를 오가며 나도 모르게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쪽으로 자원을 집중시켰고 자연스럽게 가정에는 근근히 유지될 만큼의 최소한의 에너지만 배분하고 있었으니까. 여기저기 구멍나는 곳을 메우기도 급급한 상황에서 ‘경영’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을지도 모르고.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지만 그때만 해도 시간만 넉넉하면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휴직을 결정했던 거야.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자원이 바로 시간이라고 판단했으니까.


휴직을 마음먹을 때만해도 정말 야심만만했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만 아낄 수 있으면 가정도 완벽하게 꾸리면서 내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도 착실하게 해낼 수 있을 거야. 거기에 틈틈이 취미생활도 즐겨가면서..또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졌던 친구들도 다시 만나가면서...’ 엄마도 해왔고 옆집 아줌마도 하고 있는 일을 잘난 내가 못 해낼 리 없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휴직을 했지만 기대하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어. 일이라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하던 나였는데 집안일은 도통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또 재미도 없었어.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집안일뿐이었다면 어떻게든 해 나갔을지도 몰라. 동생을 보고 정서적으로 불안해하는 훈이에게는 뭘 어떻게 해줘야하는 건지, 또래들은 벌써 여기저기 학원을 다니느라 바쁘다는데 과연 훈이 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또 절반으로 줄어든 수입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지출의 우선순위 조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어느 것 하나도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이 없더라. 선배 주부들에게 조언도 구해보고 관련 서적도 닥치는 대로 읽으며 동분서주해 보았지만 이래도 저래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어.


가정이 그저 마음가는대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한 조직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 이대로 라면 내게 주어진 24시간을 몽땅 다 쏟아 넣는다고 해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기약이 없다는 위기감이 들었어. 전략적 경영의 필요성을 절감한 순간이었지. 그리고 지금까지 1년 넘게 우리 가족의 경영철학과 전략 등 가정경영 전반에 대한 공부를 계속 진행해오고 있어. 휴직을 결정하던 당시 그렇게나 결사적으로 반대하던 당신이 이젠 오히려 나의 복직을 두려워하게 된 것도 나의 가정경영이 성과를 보이며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증거 아닐까?


나는 내가 논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 도 없어. 일터가 바뀌었을 뿐, 그리고 당장 가시적인 수입이 없을 뿐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세상에서 나밖에는 할 수 없는 차별적인 직업을 갖고 있다고 믿어. 그러니 휴직을 했어도 여전히 워킹맘인 셈이지. 일과 중엔 쉴 틈 없이 일하고 또 일과 후엔 일방적인 가사와 육아부담에 시달리는 고단하고 안스러운 워킹맘. 바로 이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억울함의 정체일거야.


당신은 늘 집에 있으면서 대체 뭘 하는 거냐고 마치 내가 빈둥거리며 놀고 있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다그치는데 그건 달리 말하면 당신은 여전히 가정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짓는 것 정도가 전부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인거야?


만약 정말 그렇다면 당신의 기준에서 나는 완전 프리라이더인 셈이네. 얼마나 억울하겠어. 당신은 힘들게 회사다니는데 나는 하루종일 책이나 보고 틈만 나면 여행이나 다며 당신이 벌어다 준 돈쓸 궁리만 하고 있는 걸로 보일테니. 당신을 이해 못하는 건 아냐. 나도 휴직전엔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남편에게 가사분담을 요구하는 전업주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던 기억도 나고. 그래서 억울함을 달래가며 어떻게든 당신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던 거구.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어.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당신은 내게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 어떻게든 당신의 인정 받아야겠어. 옵션은 두 가지겠지? 당신이 인정하는 일을 하던지,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당신에게 납득시키던지. 나로선 당연히 후자쪽을 선택하고 싶었겠지?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썼던 진짜 이유가. 나름 자신있었는데...쩝..


당신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 알았지. 나에겐 정체성이 달린 중요한 문제였는데 당신에겐 그저 시간 많은 아내의 부담스러운 애정표현으로 밖에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을. 음...어떻게 하면 우리 둘 사이에 놓인 인식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음..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이미지 출처 : https://pin.it/4Prjgy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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