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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정말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랑의 '테크닉'

우리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오르가즘의 신대륙을 찾아

by 아난다


보낸 사람 : jin 11.9.1 00:22:42



오늘도 역시나 긴 편지이군. 그런데 이 시간에 뭔가를 해야 하는데, 편지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그 뭔가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건가? 편지를 읽고 보니 사소한 행동에 감동을 느껴줘서 정말로 고마운 마음이 드네. 큰 감동이 중요하지만, 사소한 감동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



큰 감동이란 게 갑자기 로또에 당첨되어 큰 돈을 만지게 한다든가, 어느 날 특진한다든가. 등등.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큰 감동은 돈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돈과 연결 안 되면 큰 감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제부터는 이러한 감동의 카테고리를 조금씩 늘려나가고 예전의 작은 감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감동의 범주로 편입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좋아하는 시가 있어. 윤동주의 '서시'(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인데. 나는 이시를 고등학교 때 처음 알게 되었지. 왜 갑자기 이시가 떠올랐는지 궁금하지. 나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는 나름대로 일제에 저항한 저항시인의 대표작이라고 배우고 참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정말 그 의미를 진정으로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참 예전에는 괴로워 할 일 많다라고 생각했어.


하늘과 바람과 별은 우리가 생활속에서 별다른 의지없이도 항상 옆에 존재하는 말 그대로 흔하고 흔한 그래서 별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지. 그러한 존재를 보고 괴로워하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주어진 길을 가겠다고 했는데, 윤동주는 정말로 고민을 많이 했겠지. 밤에 혼자 나와 하늘을 보며 고민한 장면이 머리속에 확 스치고 지나가는데, 이렇게 혼자 하늘을 보고 별을 보며 자신을 질책하고 괴로워하고 고민했던 것 같애. 그리고 자신을 부끄러운 존재라고 생각하며 잎새가 떨리는 것에 괴로워하고.



내 마음도 한번씩 당신이나 아이들, 부모님, 장모님 등을 보며 이런 기분이 들어. 한점 부끄러움이 없고 싶고, 잎새가 떨림에도 윤동주가 얘기한 괴로움이 아닌 감동을 느끼게 되길 바라고 있어. 그리고 별보다 위대한 존재인 당신들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감동을 주고 싶어. 오늘밤에도 내게 소중한 당신들이 바람에 스치워짐을 고민하면서 내일도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지. 가족들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쇼생크 탈출’을 계속해야지.



보낸 사람 : 미* 11.9.6 16:20:47



편지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그 뭔가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한달 반이 넘게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솔직히 깜짝 놀랐어. 누차 말하지만 일하면서, 또 공부하면서 길고 긴 편지를 꼼꼼히 읽고 답장까지 해내는 당신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거든. 그런데 당신은 편지 속에 담긴 내용들을 실제 생활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까지 아끼지 않았잖아.



지난 주말 연구원 수업을 위해 집을 비우는 나를 위해 당신이 보여준 배려는 정말 환상적이었어. 당신에게 모임이 있음을 알리던 그날 보여준 적극적인 태도와, 행사 당일 저녁 전화를 걸었을 때 ‘마음 편히 잘 하고 오라’는 격려만도 감격스러웠는데, 오후에 도착해보니 집안까지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나들이를 나갔었잖아.


덕분에 나는 짧은 여행이 내게 준 이야기들을 알뜰히 갈무리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구. 그런데 당신의 마음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지. 어느틈엔가 또 나가 저녁거리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풍선을 사갖고 돌아왔잖아. 그날 풍선을 손에 쥐고 들어온 당신의 눈가에서 흘러나오는 행복한 미소를 보며 살짝 내 엉덩이를 꼬집어 봤어. 이거 설마 꿈은 아니지? ‘소통의 마법’을 확인한 순간이었다고 할까? ^^



지난 한달간 내가 당신에게 전한 메시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내 마음으로 오는 지도’였어. 물론 내 마음으로 오고 싶어하는 당신의 간절한 마음을 믿었기에, 그리고 내 마음 역시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시도였지.


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당신이 보여준 열정과 노력은 정말 훌륭했어. 이렇게나 빨리, 게다가 노련하게 내 마음의 영토에 진입할 수 있으리라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었거든. 다시 말하면 당신이 내게 품은 사랑의 부피와 밀도가 내 상상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크고 진하다는 걸 확인했다구요. ^^*



편지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 내가 편지를 선택했던 건 말로써는 전하기 어려운 마음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이미 채널은 만들어졌으니 실어 보낼 메시지가 생기면 그때 다시 편지를 띄워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의무'와 '책임'이 넘쳐나는 시기잖아. 근데 여기다 또 하나의 의무를 추가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아? 당신이 굳이 편지를 써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바꿔 말하면 일상에서 충분히 소통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니, 나로선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인 걸 뭐. 그런 거 맞지? 당신의 글을 읽는 재미를 포기해야 한다는 게 좀 아쉽기는 하지만 거기까지 바란다면 내 욕심이 지나친 거지.



알아. 당신은 ‘언어’보다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런 당신이 ‘언어’라는 칼로 잘게 다져놓지 않으면 소화흡수가 어려운 나를 위해 얼마나 애써 주었는지도. 이젠 내가 당신을 향해 다가가야 할 차례가 온 것 같다. 실은 당신을 비롯한 가족의 행복을 연구하기 위해 직장까지 쉬며 시간을 쓰고 있는 내가 당연히 해야할 일인지도... ^^



P.S.


아! 그리고 ...새로 배송된 책. ‘여의사가 알려주는 기분좋은 섹스’ 편지를 주고 받으며 반성했거든. 특히 ‘부부간의 사는 재미’에 대한 꼭지를 쓰면서 뭔가 빠져있다는 걸 깨달았달까. ^^**


남녀 모두 파트너의 신체구조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 그리고 두 사람이 더욱 만족할 수 있는 올바른 테크닉을 익히는 것, 이것이야말로 서로에 대한 배려이며 자연스럽게 절정을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여의사가 알려주는 기분좋은 섹스> 중에서


읽다보니 챙피하더라. 아무 것도 모르는 채 7년을 용케도 버텼다 싶을 정도로. 그래도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신대륙이 그만큼 넓다는 이야기잖아. 당신이 나를 위해 내 방식으로 다가와 주었던 것처럼 나도 당신의 언어를 익히고 즐길 수 있도록 애써 볼 생각이야. 기대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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