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나 본데...나 바보 아니거든!
“당신, 이번 금요일 일정있어?”
“아니, 특별한 건 없는데...”
“나 금요일 저녁에 약속있거든.”
“그래서 어쩌라구?”
뭐지? 이 방어적인 반응은? 내가 너무 밑도 끝도 없이 접근했나? 그래..섣불리 흥분하지 말고...다시한번 시도해보자!
“정훈이 알지?”
“어, 당신 대학 동기잖아.”
“맞아. 우리 결혼하기 전에 다같이 봤었잖아. 결혼식에도 왔구.”
“근데?”
“드디어 결혼한대. 10월 21일에 결혼하는데 이번 주 금요일에 신부 소개해준다고 미리 보자고 그러네.”
“조치 취해 놓고 갔다 와.”
“조치? 무슨 조치?”
“그걸 몰라서 물어?”
잠깐!! 심호흡..심호흡..흥분하면 안 되지..
우선 상황정리부터 좀 해보구...
쿨 다운..쿨 다운...
지난달 연구원 수업이후 저녁시간에 다른 일정을 잡은 적이 없고, 저녁이면 공부다 회식이다 바쁜 남편 대신 혼자 두 아이를 돌보며 고군분투하는 날들의 연속이었구만, 다른 일도 아니고 친한 대학동기 결혼 모임에 좀 다녀오겠다는데 ‘특별조치’를 운운하는 이 상황. 아빠한테 다른 약속이 없는 거 확인했으면 됐지. 무슨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는 거지?
“당신, 그날 약속 없다면서?”
“요즘 바쁘다고 말했잖아. 회사에서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구?”
“그러니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놓으란 말인 거야?”
“당신은 책읽고 글쓰느라 늘 피곤하다면서 밖에서 일하고 들어온 사람 입장은 생각도 안 해봤어?”
“당신 힘든 거 아니까 평소엔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잖아. 그렇지만 어떻게 늘 그럴 수 있어? 일이 있으면 서로 편의를 봐주고 그럼 좋은 거 아냐?”
“오늘도 퇴근하기 직전에 일 터져서 늦은 거잖아. 바깥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히 아는 사람이 답답하게 왜 그래?”
“그러니까 애들 봐 주고는 싶은데 못할 수도 있으니까 대책을 마련해 놓으라는 거지? 그런거지?”
“.................”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지만...아냐. 이건 뭔가 찝찝해. 내가 어디서 데려온 애들도 아니구...왜 함께 낳은 아이들 돌보는 일을 이렇게 애걸하듯 부탁해야하는 거야? 물론 엄마나 어머님께 부탁을 드릴 수도 있는 거지만 이건 좀 이상하잖아. 부모님의 도움없이는 최소한의 사람 노릇마저 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냐구?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구?
그치만 당신은 안 그러잖아.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 원래 있던 내 일정을 취소시키고라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까? 만약 내가 그럴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에도 당신은 ‘특별조치’따위는 신경쓰지 않았을거야. 아마도 부모님께 S.O.S.를 보내는 건 결국 또 나였겠지? 이건 너무 부당한 거 아냐?
육아는 어디까지나 부부의 공동프로젝트야. 누가 누구에게 부탁하고 어쩌고 하는 게 좀 이상한 거 아냐? 차라리 당신이란 존재가 아예 없다면 오히려 마음 편하게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것 같아. 그런데 이건 아니잖아. 아이를 낳기 전에 이런 상황을 미리 알았더라도 나는 과연 엄마가 될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아니, 질문을 달리 해보자.(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아이를 낳은 것 자체는 후회가 없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남편이라는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이란 도대체 어디까지 일까? 남편이 있다는 건 내게 어떤 의미인걸까?
가장 중요한 기여는 뭐니뭐니해도 아이를 갖게 해주었다는 것이겠지? 내가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나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세상에 불러올 수는 없었을테니까.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당신이란 존재 자체가 그대로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해. 이 아이들을 품에 안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많은 비용을 치른 데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지.
하지만 이게 다라도 좋은 걸까? 당신의 유전자가 충분히 훌륭하다는 걸 흔쾌히 인정하긴 하지만 그 대가로 아무런 용도도 없이 관리비용만 엄청 들어가는 당신을 평생 유지할 자신이 있는지는 좀 더 신중히 생각해봐야할 문제인 것 같아.
이쯤 되면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문제가 바로 ‘경제적 기여’일테지? 당신은 어쨌건 우리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러니 가족 모두는 당신에게 그에 합당한 예우를 다해야 하는 게 맞는 거겠지. 물론 당신이 고생하는 거 충분히 고맙게 생각해.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무지하게 노력해. 근데 말야.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게 있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네.
내가 왜 휴직을 할 결심을 했을까? 앞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한계라는 자각 때문이라고 말한 적 있는데,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나를 이 극한의 ‘한계지점’까지 이르게 한 걸까?
‘미래사회의 인재 양성’이라는 사회적인 과제를 ‘엄마’의 개인적인 희생을 통해 해결해보려는 무책임한 사회구조 때문이 아닐까? 그중에도 육아를 자신의 책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아빠들의 시대에 뒤떨어진 두뇌구조야말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일테고.
지금 생각해보면 헛웃음이 날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내가 치러야 했던 비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지. 하지만 후회는 없어. 죄책감과 자괴감과 원인모를 분노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던 끔찍한 시간들에서 이제라도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니까.
당신으로서는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라구? 아니 천만에. 우리는 부부라는 것 잊었어? 내 몸 안에 쌓인 부정적인 감정이 다 어디로 가겠어? 어떤 식으로든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는 것 모르겠어?
첫 번째 시나리오는 내 몸 안에서 病으로 발현되는 거지. 당신, 노후를 부인 병수발이나 하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겠지? 만약 병을 키울 대로 키운 후에 이런 사실을 깨닫는다면 나는 아마 당신이 감당도 하기 힘든 엄청난 저주를 퍼부으며 저 세상으로 가게 될 거야.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냐구? 당신, 아직도 모르겠어? 나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니야!! 그 모든 그늘을 나 혼자만 고이 품고 우아하게 사라져줄 거라고 믿었다면 당신 사람 잘 못 본거야.
두 번째, 한 이십년쯤 뒤 애들 다 키워놓고 난 다음 문득 ‘이건 뭔가 잘 못 되었음’을 깨닫는 경우. 어쩜 이편이 더 전형적이지. 그렇게 남편과 아이들의 성취가 마치 나의 것 인양 자신의 인생을 헌납한 여인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정신적인 쇼크를 ‘빈둥지 증후군’이라고 부른다더라.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갱년기의 신체적인 변화까지 겹치면 여러 가지 정신적인 병리현상을 일으킨다고 들었어. 물론 사회적으로는 그나마 가장 손실이 적은 케이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특히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피할 수 없는 의무를 누군가가 져야한다면 그냥 해오던 대로 쭉 여자들이 전담해주는 편이 덜 번거로울테니까. 그치만 불행히도 우리가 그 나이쯤 되면 ‘빈둥지 증후군’의 상실감은 우리 어머니 세대보다 훨씬 더 커질 걸.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 않으면 아이들이 다 떠나간 빈둥지의 공허함을 제로베이스에서 메워나가는 일은 만만치 않을 거라고. 그래도 참아달라구? 혹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구?
이봐. 당신. 그렇게 되면 당신은 좀 나을 것 같아? 물론 당장은 편하겠지. 내가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하며 여기에 경제적인 역할까지 해준다면 당신으로선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고 여겨질테니까.
여기서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고 싶다. 나도 당신만큼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걸. 나 바보 아니거든! 누차 말하지만 나도 내 인생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있는 사람이야. 게다가 주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천사표는 더군다나 아니라구. 지금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이런 상태가 십년이상 지속된다면...
당신과 내가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정확히 말하긴 어렵겠지만 현재의 내 수준에서 미루어 짐작하건데 당신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구상해서 복수하지 않을까? 음...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지금이라도 이 비극적인 각본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서. 게다가 가족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솔루션까지 마련했다면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경제적 기여에 못지 않은 중요한 기여라고 믿는데 그걸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힘든 건가?
당신 덕분에 경제적인 부담없이 이런 좋은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솔직히 이만한 확신이 들었다면 어떤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사수했을 시간들이었다구. 그만한 능력쯤은 내게도 있다는 거 당신도 알지?
나도 여기까지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당신이 경제력을 무기삼아 군림하려는 기색을 보이면 나도 모르게 욱 치밀어 오르는 그 무언가의 정체를 당신도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굳이 말하는 거야.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나? 그치만 뭐 한번쯤은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야기였으니 후회는 없어. 그래도 이쯤에서 다시 정리를 하는 게 좋겠지? ^^
오늘의 주제는 ‘내게 남편이란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였어. 첫 번째가 유전자 기증자. 두 번째가 경제적 기능인. 물론 둘 다 정답은 아냐. 그것뿐이라면 우리 모두에게 너무 슬픈 일이잖아.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딱 하나야. 서로를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면서 함께 이룬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책임도, 그리고 가정을 통해 얻는 기쁨도 함께 나누는 파트너로 성장해 나가는 것.
그럴 수 없다면 굳이 결혼이라는 테두리를 유지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이렇게나 솔직하게 내 마음을 당신에게 드러내 보이는 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야. 사랑하며 살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이미 하자가 검증된 낡은 사고방식과 싸우느라 보내는 건 너무 바보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럼 부디 이 기나긴 편지가 철지난 허울이 만들어놓은 당신과 나 사이의 오래된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 빌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