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아내좋고 남편좋은 일
“글은 잘 돼 가?”
“어..뭐...아니, 솔직히 요즘 좀 그래.”
“뭐가 문젠데?”
“잘 모르겠어. 자꾸만 화가 나. 화를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데도 울컥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분노가 감당이 안 돼. ”
“내가 그렇게나 많이 잘못 한 거야?”
“아니, 그게 왜 몽땅 당신 탓이겠어?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인데 나도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그걸 아니까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아. 시간은 성큼성큼 흘러가는데 글은 도무지 풀리지 않구, 불안하고 초조해지니까 다른 일마저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구, 그러면 그럴수록 당신과 아이들 볼 면목도 없어지구,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데 여기에 죄책감까지 겹치니까 글은 점점 더 이상하게 꼬여만 가구...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할지 모르겠어.”
“그동안 힘들단 말 안했잖아. 당신이 항상 자신만만하길래 시간만 가면 다 되는 건 줄 알고 있었구만. 근데..그렇게 힘들어하면서까지 책을 꼭 써야 해?”
“어! 드디어 나왔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 사실 당신이 그렇게 말할까봐 그동안 애써 잘 되고 있는 척 허세를 부렸던 거야.”
“왜 그래야 했는데?”
“그 대답을 하기 전에 당신에게 먼저 하나만 물어도 될까?”
“그래. 물어 봐.”
“당신, 내가 왜 작가가 되고 싶어한다고 생각해?”
“그게 당신 꿈이라면서?”
“그러니까 왜 작가를 꿈꾸게 되었다고 생각하냐구?”
“아! 당신 작가돼서 나보다 돈 더 많이 벌면 그동안 나한테 돈 안 벌어 온다구 구박받은 거 다 복수할 거라구 했잖아. 그런 구박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도 좋아. 그니까 얼른 써서 돈 많이 벌어다 줘. 헤헤.”
“당신, 지금 졸립구나?”
“벌써 열두시가 넘었잖아. 나 내일 출근하려면 지금은 자야하는데.. 이제 그만 자면 안 될까?”
어제 밤 우리가 나눈 대화. 당신은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코를 골며 잠속으로 빠져들었지만 나로선 동네가 떠나가게 ‘유레카!’라도 외치고 싶을 만큼 짜릿한 깨달음의 순간이었지.
아! 이거였구나. 그동안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었구나. 바로 이것이야 말로 요사이 나를 힘들게 하던 얽히고 섥킨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 줄 지도 모르겠다.
뜻밖의 수확이었어. 물론 자는 당신을 흔들어 깨워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은 유혹을 가라앉히는 건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지. 그렇지만 잠시 숨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뭐냐구?
에잇. 알면서.. ^^ 난 작가잖아. 글로 쓰면 나는 지면이 늘어나 좋고, 당신은 편한 타이밍에 정리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고 그야말로 아내좋고 남편좋은 일 아니겠어? 어때? 나 똑똑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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