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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던 역사적인 순간

by 아난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연구원 과정, 충분히 만족스럽냐구? 행동이란 백마디 말보다 더 강한 메시지라지? 그렇다면 육아휴직으로 소화하기로 했던 1년차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지 않고 이대로 2년차를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애초에 연구원을 하기로 하면서 말했던 읽고 쓰기에 대한 흥미가 단순한 흥미수준이 아니라 재능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얻은 거냐구? 그리고 작가로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도 생긴거냐구?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 그렇다!’. 근데 이 결론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우리가, 아니 적어도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어. 분명히 작가 수업으로 알고 들어왔는데 이건 어째 영 방향이 이상한 거야. 지금이야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솔직히 처음엔 당황했던 것이 사실이었지. 나를 알아봐 준스승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결혼해서 네가 제대로 한 게 뭐가 있냐던 당신의 독설이 아니었더라면 중간 어느 지점인가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었을지도 몰라. 실제로 심하게 그러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던 때도 있었고.


작가 수업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대체 뭘 한 거냐구? 2년차를 맞은 내 관점에서 연구원 과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익명의 활자중독자들>! 기억나지? 앞서 중독이야기에서 소개한 <익명의 알콜중독자들>이라는 자활 프로그램말야.


이 프로그램은 비판이나 판단이 유보되는 분위기를 제공함으로써 회원들이 자신의 가장 사적인 관심과 걱정들을, 당혹함이나 독설적 반응에 대한 두려움없이 열린 마음으로 터놓고 드러내도록 격려하는데, 바로 이 과정을 통해 회원들은 감추어 두었던, 혹은 자기도 모르던 상처를 치유받고 그 힘으로 자아의 서사를 새로이 써나갈 수 있게 된다고 했잖아. 이렇게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되면 비로소 중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 즉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다시 정리하면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 2년 과정중 1년차의 학습목표는 건강한 자기정체성 회복(나는 누구인가?)’, 2년차는 찾아낸 정체성에 맞는 라이프스타일 구축’(나에게 맞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인 셈이지. 연구원 과정을 디자인하신 스승의 의도가 실제로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게는 정확히 그런 과정이었어. 지금도 깜짝 놀라는 중. 스스로에게 필요한 자원을 찾아내는 나의 이 놀라운 직관과 행동력! 헤헤. 넘 많이 왔나?


전에 가슴과 머리중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러고 보면 먼저 방향을 제시하는 편은 역시 가슴, 다시 말해 '직관'인 것 같지? ‘작가로서 재능이 있는지 또 작가라는 직업이 내게 맞는지’를 알아보겠다고 시작한 공부였지만, 당시 나는 그런 건설적인 작업을 하기엔 너무나 지쳐있던, 그리고 상처가 많은 토양이었으니까. 뭘 하더라도 노폐물을 걷어내고 굳어버린 지반을 고르는 작업이 우선이었던 거지.


하지만 당시의 내가 가진 이해력으로는 이런 상황까지는 파악이 안 되었던 것 같아. 또 만약 누군가에게서 정확한 상황설명을 들었더라도 스스로가 이만큼이나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할 만큼의 담력도 없었을 테고. 그러니 가슴 입장에선 별 수 있겠어? 머리가 납득하는 선에서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서라도 필요한 자원에 접근하는 수 밖에. 물론 이 모든 것은 다 결과론적인 해석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거꾸로 말하면 당시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이라는 의미겠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느낌’에 대한 신뢰는 이후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 나 자신조차 ‘나 좀 이상한 거 아닌가?’ 끊임없이 의심하던, 그래서 그렇게나 남으로부터의 ‘인정’에 목말라하던 내가 자아의 서사를 새롭게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내가 특별했던 건 덜 이성적이어서가 아니라 더 직관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된거야. 스스로를 믿고 존중하게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그 무언가를 통해 나를 증명하기 위해 굳이 무리를 할 이유가 있겠어?


중독이 특정 종류의 불안에 대처하지 못하는 기저적 무능력을 나타낸다면 내 중독의 핵심을 이루는 특정종류의 불안이란 바로 ‘자기신뢰'의 결핍에서 비롯되었던 거야.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확신 말야. 지긋지긋하던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던 역사적인 순간이었지.


물론 위의 설명은 내가 자기신뢰를 얻는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 분명하지. 하지만 그 복잡다단한 과정을 일일이 다 설명하려다간 당신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대체 ‘작가가 될 수는 있는 거야?’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너무 늦어질 거 같으니 우선 그렇게 얻은 결과, 즉 나의 정체성과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할게.


이미지 출처 : https://www.framesgallery.co.uk/buy-online/the-act-of-se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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