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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greene Jun 09. 2024

남녀 사이 친구 가능?

맞다이로 들어와


Image Credit : Canva

1.

무엇을 믿을지는 개인의 자유다. 종교를 믿지 않으면 재판장에서 증언 조차할 수 없었던 중세시대, 특정 사상을 믿는다는 이유로 탄압받았던 근대사를 떠올려보면, 믿음의 자유는 현대인의 특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 억겁의 윤회사상에 대한 불심, 지구는 구(球)가 아니라 평평하다는 주장, 하물며 근시일 내에 외계인이 지구를 곧 침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도 공존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자유롭지 않은가?


믿음의 다양성은 이전의 인류가 물려준 유산이기도 하지만, 그 명맥을 이어가는 것은 21세기 인류의 과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타인의 믿음이 우스꽝스럽고 얼토당토않게 느껴지더라도, 그마저도 포용하는 것이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미덕이다.  이를테면, ‘남녀사이에 친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갖고 있더라도, 결국 내 믿음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상대의 믿음에 대한 존중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기본 규칙이다.


2.

서로에 대한 믿음의 존중은, 각자의 믿음을 자유롭게 표명해도 무방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다 혹은 없다고 별 부담 없이 말할 수 있지만, 불과 몇백 년 전에는 이런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굳게 믿는 갓 쓴 선비가 아버지였다면, 불순한 사상을 갖고 있다고 나를 훈계하며 뺨을 후려쳤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지금 자유롭게 남녀사이에 친구가 없다고도 발언할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남녀사이의 친구 유무는, 마치 종교의.. 인격신의 존재처럼 진위를 논하기에는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종교가 있는 사람에게 신의 부존재를 이성(理性)으로 어찌 논증할 수 있겠는가? 그저, 리처드 도킨슨의 ‘The God Delusion’을 인상 깊게 읽었고, 또 이런저런 경험을 토대로 남녀 사이에 친구가 없다고 믿는 나로서는 여전히 인격신도, 남사친도 없다 믿을 뿐이다. 물론 이것이 대단한 신념도 아니라서, 나의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상대의 믿음을 반박할 필요도 없다 느낀다. 우연한 계기로 나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3.

미취학아동시절의 기억을 곱씹어보면, 만 5살 때쯤이었나.. 놀이터를 가고 유치원을 오가며 이성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그들과 진정한 벗이 될 수 없음을 체감하게 되었다. 좋아하지 말래도.. 나를 왜케 쫓아다니던지…참.. 물론, 시간이 흘러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통해, 명시적으로는 친구라고 라벨링 된 이성들도 더러 있었으나, 결국 그 과정 역시도 남녀사이에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견고히 하는데 일조하는데 그쳤다.


남녀가 관계를 형성하면 이성의 감정이 싹틀 수 있는 가능성 혹은 위험이 상존한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남녀는, 이성인 친구와의 관계 유지가, 미혼일 때와 달리 그 '나름의' 타당성마저 잃게 되는 이유도, 결국 그 이성인 친구와의 관계가 발전될 수 있는 확률을 그 누구도 100%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하고 이성인 친구와의 만남을 허가하는 것은, 일방의 미필적 고의, 또 다른 일방의 방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사고방식은 확증편향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내게 가장 소중한 벗이 여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인 간의 문제 상당수가 결국, 또 다른 이성과의 관계로부터 촉발된다는 것을 고려해 보자. 그 이성인 친구가 내 인생의 귀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나와 연인이 구축한 견고한 성에 어느새 깊숙이 잠입한 트로이 목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믿음, 특히 남녀 관계에 대한 믿음은, 각자 그 나름의 역사와 우여곡절, 서사를 갖는다. 그래서 각자 나름의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구축되어 있으며, 이는 지극히 상대적이며 비논리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유연애상태에서까지 굳이 이성친구를 제외한 모든 이성인 친구와의 관계를 배제할 필요가 있는지는 오롯이 개인의 선택이다.


4.

현실적인 대안은 유유상종이다. 한 쌍의 연인은 남녀사이 친구 유무에 대해 공통된 믿음 체계를 갖는 것이다. 애초에 쌍방이 남녀사이에 친구는 없다고 믿으면서 교제하는 동안 문제 소지를 원천 차단하거나, 적어도 둘 다 있다고 믿으며 그 가능성의 발현에 대한 암묵적이고도 공정한 합의를 하는 것이다.


5.

상술한 바는, 통계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사실이 아니며, 남녀 관계는 모두 ‘이래야 한다’는 당위도 결코 아니다. 조금이라도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내 필력의 한계, 나아가 텍스트라는 방식이 빚어낸 오해다. 물론, 내 사상의 불온전함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한 인간의 제한된 경험에서 도출된 귀납적으로 결론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논쟁에 참여하고 남녀사이에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일갈을 원한다면, 맞다이로 들어와라.. 언제든 환영이다. 다만, 내 배후에는 남녀사이에 친구가 없다고 믿는, 열성적이고도 다소 과격한 지지자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하길 바라며...간만에  케케묵은 주제에 대한 소견을 끄적여보았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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