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시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van greene Sep 15. 2024

워라밸과 젊음

추석연휴 좋음

1. 워라밸은 대개 타의로 조정된다. 산업이나 회사의 특징에 따라 바쁜 시기가 있거니와, 애당초 월급쟁이는 누군가에게 고용되었으니 자의로 시간을 안배하는 게 어렵다. 돌이켜보면, 나도 유동성이 풍부했던 2021년, 주식시장이 호황이었을 때 수많은 상장사들이 자금을 조달하면서 해 뜨고 지는 것을 못 보고 출퇴근하는 게 일상 다반사였다. 야근하다 선배랑 나와서 담배 피며, 눈앞에 즐비한 여의도 마천루 빌딩들을 보며, 한숨과 비속어를 얼마나 자주 입 밖으로 뱉었는지 모르겠다. 주말출근까지 하다 보면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몸도 많이 상했다. 이듬해에는 다수의 기업들이 IPO를 하면서 외부 미팅도 잦고 회사를 방문해서 실사를 하다 보니 외근이 많다. 그러니 회사로 복귀해서 야근하는 게 당연하다. 출근은 또 8시까지임ㅋ


2. 증권사 IB에 있을 때는 참 넓고 깊은 정보를 '퀵하게' 달라는 말을 자주 한다. 


오전 중으로 가능? -> 너가 지금 무슨 일 하는진 모르겠고, 내가 제일 급함. 다 제끼고 내 거부터 해주면 됨.

내일 아침까지 가능? ->  야근이 불가피할 것 같구나

다음 주 월요일까지 가능? -> 주말에 일정 없지?


반도체, 2차 전지, 제약바이오 의료기기, 소비재, 인프라 등 기업 지배구조, Valuation, 자본시장법, 상법, 증발공 등등.. 누가 딱히 가르쳐주지도 않지만, 뭐든 ASAP이다. 윗분들도 다들 너무 바쁘니 이해한다. 나도 올라가면 똑같이 했겠지.. 일일 단위로 트래킹 하는 미친 실적 압박과 더불어, 각자 바쁠 때는 선후배들도 다들 신경이 곤두서있으니 눈이 반쯤 돌아있다. 그러다 수식 잘못 걸려서 숫자라도 틀리면 아찔하다. 특히, Dart에 공시를 하다 보면, 자료 작성을 끝내고도 오탈자는 없는지 몇 번이고 체크한다. 그럼에도 참 야속하게, 공시 후에 틀린 거를 발견할 때가 있었는데, 생각만 해도 PTSD 오네..


3. 비교적 혹독한(?) 몇 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주니어 때는 워라밸 수호가 필수불가결한 '이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도 기왕이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열심히 해두는 게 낫기 때문이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나이가 들면 학습능력이 떨어지며, 타성에 젖으면 배울 의지도 없어진다. 보통, 그때 습득한 지식들이 토대가 되며, 일처리 방식도 평생에 걸쳐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워라밸 수호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없지만, 사회초년생들한테 맥락 없이 워라밸을 지키라는 말을 절대선처럼 주장하는 것은 꽤나 무책임하다고도 느낀다. 더불어, 워크에 대한 가중치가 높은 젊은이를 보며, 마치 삶에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사람처럼 치부해 버리는 시선 역시도 편협하다.


3. 성장 잠재력이 높고 부가가치를 많이 낼 수 있는 시기에 라이프를 챙겨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훗날 워크와 라이프의 가중치를 조절하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세상은 하루하루 급변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생존이 인공지능 활용여부에 따라 좌지우지되며 패러다임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 나도 일을 할 때, 점점 챗지피티와, 퀀티와이즈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들을 십분활용하려 한다. 애매하게 워라밸 챙기다가 노동시장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주니어가 워크를 등한시하며, 라이프를 좇는 것은 착오라고 생각한다.(물론 집에 캐쉬많으면 예외..) 근데 하루 중 가장 활기찬 시간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조차, 적당히 만족하는 시간을 보내지 못하면서, 그 외 시간에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직간접적인 경험을 미루어 봤을 때도, 워크에 대한 삶의 가중치가 조금 더 높은 사람들이 라이프 역시도 활기차고, 삶 자체가 점진적으로 윤택해지는 것 같다.


4. 개인적으로 젊고 열심히 사는 사람을 좋아한다. 단순히, 멋져 보여서라기보다는, 희소함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명예와 경제적 자유를 얻은 중장년들이 모든 것을 지불하고도 얻고 싶은 것이, 젊음이다. 그 에너지와 생기.. 무엇으로도 등가교환 될 수 없는 가치다. 그러니, 젊고 열심히 사는 애들은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반박 시 늙은 거임ㅇㅇ.. 그러니 그들이 지치면 밥을 사주거나 기프티콘이라도 보내주며 독려해야 한다. 참고로, 나는 최근에 이직을 하고 이래저래 지쳐있다ㅋ


5. 이번 연휴는 기니까 정말 좋다. 라이프를 챙겨야 할 때이다. 다들 즐거운 한가위 되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자유..출산과 별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