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의 범주는 넓다.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전개되는 사랑의 마시멜로우 같은 몰캉몰캉함, 밀라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보이는 치정만 해도, 사랑의 간극은 상당하다. 하물며, 쇼팬하우어는 남녀 사이의 끌림은 성욕과 DNA의 작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으니, 그저 호르몬의 분비로 묘사할 수도 있다.
물론 거창한인용 없이도, 종이 한 장과 펜 하나를 주고 아무에게나 사랑을 논술해 보라 하면, 각양각색일 것이다. 아니, 하물며 한 개인의 삶에서도 시기에 따라 사랑이 다르지 않은가. 과거의 자기 자신이 했던 사랑을, 정신적, 경제적으로 달라진 상황의 내가, 반박하거나 번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랑은 모두 저마다의 편협함이 있고, 상호 배타적이지 않은 채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그래서 솔로몬에 빙의하여 ‘진정한’ 사랑의 범위와 형태를 심판하는 것은 오만에 가깝다고 본다. 이를테면, 근저에 연민이나 동정이 밑바탕에 있으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거나, 질투나 소유욕이 지배적인 감정이라고 사랑의 분류체계에서 솎아내야 한다는 검열말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이 포괄성 마저 포함할 수 없는 형태의 지탄받는 사랑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 사실이 누군가가 사랑의 범위를 독선적으로 정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불어, 보통 이런 논쟁의 말로는 대체로 서로의 간극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고 상처만 고스란히 남을 뿐인 듯하다.
3.내게 상당히 여운을 준 Her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AI로 구성된 목소리인 사만다에게 각별한 감정을 갖는다. 여태 마주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마주하지도 못할 AI에게 말이다. 거의 10년 전 대학교 학술정보원에서 그 영화를 보고 자취방으로 터벅터벅 걸어올 때의 먹먹함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보고, 비로소 그때 그것이 사랑의 속성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따금, 진정한 사랑에 대해 탐구해 볼 때면, 어김없이 머리는 멍해지고.. 가슴 어디 한 켠이 저릿해짐을 느낀다. 진정한 사랑, 아니.. 진정하지 않은 사랑이라는 게 애당초 실존 할 수는 있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으로도 귀결된다. 가끔, 내게 진정한 사랑은 무엇이었을지... 곱씹어 보면, 잔상들만이 아른 거릴 뿐이다. 며칠 전 일도 기억하려 애써야 하는 마당이니, 몇 개월, 몇 년이 지난 기억들은, 기억의 해상도가 상당히 옅다.
그럼에도 이런 연휴에는, 사고를 포기하지 않곤 한다. 집중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심상에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지, 집념을 갖고 응시하였더니... 결국 내가 관찰한 형상은, 사랑'하다'라는 행위(verb) 자체였다. 아지랑이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
4.'찐'사랑을 하고 있다 여기는 사람은, 어쩌면.. 어떻게 그 정도로 사랑하는 대상을 여태 만나지 못한 것이냐며,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볼지도 모르겠다. F로 가득 찬 이에게는, 이런 발상 자체가 상처가 될 수도 있겠으니, 서글픈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정한 사랑은, 사랑의 대상 보다, 사랑을 '하는' 행위에 방점이 찍혀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첨언하면, 추억에 잠겨, '그대를 사랑한 것인지, 그때를 사랑한 것인가?'라는, 자주 등장하는 이분법 앞에, 나는 후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5.2000년대 초반, 서정적인 멜로 영화들을 보다 보면, 그 당시의 사랑과 지금의 사랑은 결이 많이 다르다고 느낀다. 지극히 나의 언어로 풀어내면, 조금 더 사랑 본연의 행위 자체가 생동하는 느낌이랄까.
돌아오지 않을 과거에 대한 막연한 동경 혹은 옛 기억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다. 혹은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 오롯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는, 사랑할 '대상'을 먼저 찾은 후에야 '사랑하다'라는 행위가 뒤따르는 것이 불가피 해진 것 같다. 다들 바쁘기도 하고…먹고 살기가 어러워져 대상의 중요성이 과거 보다 올라간 것도 분명하다. 물론,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타당한 논리는 없다. 서두에 언급했듯, 사랑의 확장성과 진정함에 대해서, 솔로몬에 빙의하여 심판하려는 행위는 무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대상에만 집중하게 되면 여러 부작용이 있다. 이를테면, 상대의 불분명함은, 탐구할 신비로움이 아니라, 손전등으로 비추어 규명해야 할 블랙박스처럼 느껴진다. 마치 기업 간 인수합병의 실사 과정처럼, 대상의 모든 것이 분석되고 검증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말이다. 그러니, 단 하나의 결격 사유라도 발견하게 되면 거기에 매몰된다. 아..아쉽네…아..이것마저 도 좋았으면..
아직, '사랑이라는 행위'를 하기 앞선 단계이니, 다른 대상을 물색하게 되는 의사결정을 해 버린다.
7. 인간은 본능적으로 향상심이 있다. 상향혼이라는 단어처럼, 단순히 나보다 더 나은 상대와의 만남을 그리는 것을 넘어, 현재의 상태보다 더 나은 상황을 지향하는 것은 지극히 본능적이고 상식적인 바람이다. 하지만 '대상'에만 매몰되다 보니, 육각형남/녀라는 단어가 팽배해졌고, 그것이 마치 사랑의 최종 지향점으로 여겨진다.
그런 사람이 존재할 확률과,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의 얼마나 희박한지는 별개로, 그들에 대한 기대는 나의 향상심에 대한 표출이자 욕망에 가깝다.
8.‘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며 구천을 떠도는 유령처럼 방황하는 이들이 있다. 행위 자체로서의 사랑을 하고 싶다는 갈증의 표출일터이다.
*아무쪼록, 선후관계를 떠나,
사랑할 대상을 찾고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자들, 우연히 진정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대상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건강한 부러움이 있다. 모두 축복이 있기를
*나의 생각에 굳이…한 가지 기대해볼만한 구석을 찾는다면, 누군가에 의해 사랑은 사실 행위 자체가 아니라, 전적으로 대상에 의한 것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바꿀 여지가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