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영화를 평할 때, 소재나 접근방식, 둘 중 하나만 참신하면 좋은 작품이라고 느낀다. 그런 측면에서 미키 17은 영화라는 매체로 다룰 때, 참신한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단순히 재밌었다기보다, 인상적이었다는 평이 적절할 것 같다. 관람 후, 머릿속에 맴도는 몇 가지 키워드 중, 내가 천착한 요소들이 있어.. 주말을 맞이하여 몇 자 끄적여보았다.
1. 임상 과정
타이레놀과 술을 함께 복용하면 간 독성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모든 약은 오남용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인데, 하물며 약으로 승인되지 않은 물질들은 인체에 미칠 영향을 알 수 없으니 더욱 위험하다. 그래서 FDA와 같은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아 시판되기까지, 오랜 기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임상 시험을 진행한다. 전임상에서는 동물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테스트하고, 임상 1~3상에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유효성, 안전성, 적정 용량 등으로 테스트한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수백 건 이상의 대규모 임상시험을 전 세계 각국에서 진행하고 있으니, 임상 시험에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는 상당할 것이다. 현존하는 약물로는 달리 손쓸 방도가 없는 환우분들의 경우, 병원 내 모집을 통해 임상에 참여해 회복되는 분들도 있을 테고, 고혈압/당뇨병/관절염 등에 대한 임상시험 공고는 지하철 옥외광고를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밖에도 온라인에서는 고액의 사례비를 지급한다는 명목으로, 피험자를 유인하기도 한다.
2. 21세기 지구의 미키
반면에, 전임상 단계에서 실험에 쓰이는 동물의 수는 인간 피험자 수를 훌쩍 상회한다. 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국내에서 실험에 사용한 동물의 수를 약 499만 마리,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마리로 집계하며, 대략 90%가 실험용 생쥐(mouse)이고, 이밖에 집쥐(rat), 햄스터, 토끼, 미니돼지, 마모셋, 제브라피시 등으로 구성된다. 쓰다 보니 인지했는데, 미키 17의 네이밍 자체가, 애초에 mouse와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네...
이때 안전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동물에 암세포를 이식한다. 질병을 겪게 하여, 통증, 스트레스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 과정과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관찰한다. 어쩌면 도축되는 동물보다 더 애잔한 삶인 것 같기도 하다.
영화 속 배경을 미래의 우주라는 시공간으로 상정했지만, 실상은 21세기 지구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키 n은 양산되고, 소실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미키 17]은 영화라는 가면을 쓴 익살스러운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3. 공리주의
영화 속 의장(?)처럼, 인류의 미래와 변영이라는 명분을 내건다면, 생명에 대한 임상 시험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실제로 글로벌 빅마파를 비롯한 국내외 바이오텍들은, 대내외적으로 환우들의 삶의 질과 더불어 인류의 행복을 위한 신약 개발을 Mission으로 천명한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비윤리적 행위 자체를 정당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임상 시험은, 그 사상적 토대를 공리주의를 근간으로 했을 때, 비로소 논리적 타당성과 감정적 설득력을 동시에 갖는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관념에 의거하여, 다수의 행복(이익)을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임상에서 수많은 미키들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죽음을 맞이하는 반복과, 일부 피험자들의 부작용과 후유증은, 그저 공리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짤막한 단어로 무마될 수 있다. 따라서, 실험실에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들추는 것 자체가, 공연히 다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된다.
3. 비자발적 희생
하지만, 미키 17과 미키 18이 공존하며 각각 생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시작했을 때, 공리주의의 맹점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대상이 비단, 미키 17.. Mouse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피험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공리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것이, 진정으로 자발적인 것이라는 질문에, 우리는 벙어리가 된다.
영화에서, 미키 17과 미키 18의 서로 다른 기질을 부각함으로써, 동일한 Input을 주입하더라도 상이한 Output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연히, 공리주의는 빛 좋은 개살구이자, 누군가의 전유물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이른다.
4. 윤리
인간은 기술의 발전에 따른 변곡점에서 어김없이, 무엇이 '윤리적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윤리에 대한 기준이, 각자의 마음속이나 우리 사회에 정형화된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윤리 역시도 인간과 사회처럼 유기적으로 변한다.
대체로 윤리는 전적으로 다수결에 의거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 상식이 되는 것처럼,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회 규범이자 준칙이 되고, 윤리가 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 그들이 실험실에서 보여주는 천연덕스러움과 미키를 대할 때의 잔인한 행위와 대비되는 태연함이 다소 기괴하다. 그런 장면들이 낯서니, 그것은 '비윤리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면, 실험실 직원들은 미키에게 조금의 죄책감도 느낄 수가 없다. 그들이(다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키에게 다양한 test를 하는 것이고, 공리라는 명분까지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인간의 윤리성은, 진보된 기술의 등장으로 후행하며 발전되는 것이지, 무언가 더 나은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선행하여 발전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관념론보다는 유물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비단 임상 시험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육식 그리고 장신구로 쓰이는 수많은 생명들에 대한 비윤리적인 단상들도 그렇다. 과학 기술이 더욱 진보하여, 생명공학 및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술로 임상 과정이 완전히 구현이 된다거나, 세포 배양기술을 활용한 배양육이 실제 육류의 맛에 버금갈 정도로 발전되었을 때, 그제야 우리는 한 걸음 더 윤리의 반경을 넓힐 수 있다.
5.
이런 질문들을 하나둘 외면하다 보면, 어느새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하다고 느낀다.
그러니 당신은 어떤 답을 갖고 살아갈 것인가?
그저 먼 미래의 우주라는 공간이라 생각하며 외면할 것인가,
그들을 대변하고 항거할 것인가,
인간의 모순과 위선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