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트럼프는, 미국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를 크립토와 연계하여 천명할 정도로, 비트코인에도 우호적인 입장이다. 마침 어제, 5개 암호화폐(비트코인, 이더리움, XRP, 솔라나, 카르다노)를 전략 자산으로 비축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최근 큰 낙폭을 보였던 가격이 반등을 했다. 최근 몇 개월을 반추해 보면, 비슷한 시기들이 있었다. 24년 11월경에는, 암호화폐를 국가 전략 자산으로 비축해, 미국을 세계의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었고, 25년 1월경에는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표명했다.
트럼프의 언행과 크립토 가격의 개연성이 높아짐에 따라, 마치, 트럼프가 비트코인의 본질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처럼 혼동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본말이 전도된 시각이다. 그저, 트럼프에게(미국에게) 비트코인이 필요해져, 지금과 같은 행보를 보이는 것뿐이다. 물론, 트럼프의 두 번째 집권 과정에서, 암호화폐에 친화적인 슈퍼 PAC에서 막대한 정치 자금을 지원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뭐가 됐든, 트럼프 1.0과 달리 암호화폐에 우호적으로 바뀐 이유는, 전적으로 비트코인이 필요해서이다. 따라서 비트코인에 대한 트럼프의 언행이, 단기적인 셈법을 복잡하게 만들고 변동성을 키우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선후관계를 반대로 여겨서는 안 된다.
'비트코인이 왜 등장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투자자)라면, 단기적인 가격흐름이 만들어내는 차트를 보고 부화뇌동하거나, 미국 정부에서 비트코인 관련 정책을 우선 혹은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는다는 것에 조마조마해하지 않는다. 한 발 자국 물러서서 보면, 미국의 수많은 정치 어젠다 중에서, 다른 우선순위의 처리할들이 많을 것이다. 미국이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자산으로 매입할 때도, 재원은 한정적이고 비트코인은 2,100만 개로 개수도 제한되어 있으니, 어떻게든 개당 단가를 낮추려고 바라보는 게 그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상식적이다. 그러니 여러모로 빨리 처리될 일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2.
비트코인을 기업의 Valuation으로 접근하는 것은 패착이다. 애당초, 재무제표가 없다. 통상, 특정 산업에 속한 회사들의 평균 P/E multiple이 15배라고 가정했을 때, A라는 회사의 multiple이 7배라면, '싸다'라고 말할 수 있고, 반면에, B라는 회사의 multiple이 30배라면 '비싸다'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손익이나, 자산이 없는데 어떻게 기존의 접근법이 유용하겠는가. 기존의 관점으로 보면, 납득이 되지 않는다.
1BTC, 100만 원은 싼 것이고, 1억은 비싼 것이고, 1,000만 원은 적정가격인 것인가?
접근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여전히 물음표로 귀결된다. 따라서, 특정 가격에 비트코인이 비싸, 싸라는 판단에는 어폐가 있다. 이는 전적으로 기업의 Valuation으로 비트코인의 가격을 접근하는 오류를 범했을 때 발생하는 상황이다. 물론, 특정 시점과 현재를 비교하여 그 낙폭을 통해 비싸고 싸고를 판가름할 수도 있으나, 이 직관적인 느낌에 의거한 판단은, 여전히 절대 가격에 대한 설명력을 갖지 못한다.
임시방편으로, 그냥 금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비트코인의 속성은 기업보다는, 금에 훨씬 가깝다. 사람들이 금의 차트를 보고, 비싸다/싸다라 말하지 않는 이유를, 비트코인에도 그대로 이식시키면 된다. 나아가, 금에 대한 Valuation을 까다롭게 하면서 매매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의 체계 속에 안전자산으로서 공고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의성 있는 매매 전략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비트코인이 의심을 받고, 비판받는 과정은, '주류'가 되기 위한 매우 일반적인 수순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믿음 체계에 자리잡지 못했지 않은가. 따라서 비난과 조롱마저도, 사실은 건강한 자양분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과정을 낙관적으로 묘사하면, 응당 거쳐야 할 성장통이라 할 수 있겠다. 일단, 이 과정을 넘어서고 우리의 믿음 체계에 자리만 잡으면, 그 신뢰는 '절대로' 쉽게 무너지지 않기에, 모든 고난을 보상할 상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3.
몇 달 전 비트코인이 처음 100K를 찍었을 때, 크립토 생태계에서도 상징적인 날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금융, 나아가 인류 역사에서도 길이 남을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라 생각한다. 십진법의 수 체계가 익숙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한국인의 1억처럼, 100k는 전 세계적으로 일정 수준의 '믿음'이 어떤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싸고, 비싸고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으로 봐야 된다. 전적으로 믿음이 체계가 점차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현상 말이다. 이 관점에서 보게 되면, 결국은, '지금 비싸지 않아?'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 있다는 것이, 적절/적합하지 않은 시각이라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한 단어로 집약하면 길항의 법칙이라 할 수 있겠다. 길항의 법칙이란, 가치가 있다고 믿는, 믿음 체계를 공유하는 것이고, 이것이 화폐의 근원적 특징임을 알아야 한다. 지식기반으로 조목조목 따지는 투자가 아니라, 비트코인이 '점진적으로' 전 세계인들의 믿음체계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인문학적 사유가 수반되어야 한다. 애초에 Fiat money(종이 화폐)는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종이 쪼가리이다. 비트코인이 일상에 쓰이는 화폐로 자리 잡는다는 게 아니라, 화폐의 속성 자체가, '믿음'이라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조개 껍데기이든, 나무작대기이든, 종이 쪼가리이든, 사회에서 하나의 공통된 믿음이 부여된다면 그것은 가치를 갖는다. 정확히는,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우리는 현금을 잘 쓰지도 않는 사회에 돌입했다. 눈에 보인다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애초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4.
다시 돌아와, '비트코인이 왜 등장했는가?'라는 이 단 하나의 물음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다면, 비트코인은 하나의 투자 혹은 투기의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나아가, 스캠이다, 화폐가 될 수 없다, 변동성이 너무 크다, 비싸다 등등의 각양각색의 평에 대해서, 열을 올리며 항변할 이유가 전혀 없게 된다. 가격의 향방과 무관하게, 등장 자체가 이미 인류사에 매우 의미 있는 하나의 이벤트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모든 상장사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의 단일 자산이 된 비트코인은 여전히, 스캠이라는 평과 단가에 대해 '비싸다'라는 단선적인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현재 획득한 지위가 무색할 만큼, 혹은 민망하리만큼, 대중의 인식과 간극이 상당히 크다.
과도기를 지켜보고 또 인식의 분기점에서 변모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이 흥미로울 따름이다.
비트코인은 투자의 대상임을 넘어,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유용한 교보재이다.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 중 하나로 알려진 2010년 5월 22일, 한 프로그래머가 10,000 BTC로 피자 두 판을 구매한 사례가 있었다. 이 거래를 기준으로 하면, 당시 1 BTC의 가치는 약 0.0025달러로 추정할 수 있는데, 당시를 기점으로, 2025년 3월 3일 현재 1 BTC 가격인 93,131달러일 때, IRR은 약 219.70%이다.
**매수/매도의견 추천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