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미중관계에 대해 공부할 때, 꽤나 난이도 있는 주제 중 하나가 미국 국채와 관련된 경제 역학이었다. 기본적인 구조는, 미국이 발행한 국채를 중국이 매입하고, 중국은 미국에 공산품을 수출하는 것이었다. 사실 하나의 학문/이론으로는 크게 흥미롭다고 느끼지는 못했었는데, 아무래도, 미국이라는 '국가가 발행한 채권'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내게 미치는 파급효과까지 연결 지어 생가하기에는, 지적 수준과 호기심 둘 다 부족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균형을 갖고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던 그들의 거래 구조에 균열이 갔고, 추가로 크립토..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주체'가 생기면서, 더 이상 미중관계의 국채가 그들만의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 보다 보편적인 아젠다로 거듭나게 되었고, 금융업, 나아가 개인들의 투자 자산에도 직결되는 주요 동인이 되었다.
1.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토대로 세계의 공장으로 기능하며, 무역을 통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특히 미국과의 무역에서 큰 흑자를 기록하며 달러 자산이 급증했고, 중국은 보유 달러를 미국채에 투자하여 외환보유고를 운용했고, 미국 국채의 최대 해외 보유국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물론, 합리적으로 보이는 거래의 이면에는, 이런저런 부작용이 수반됐는데, 대표적으로는 미국 내 제조업의 몰락이었다.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Rustbelt 노동자들은 자국 내 제조업이 모두 무너지면서 그들 역시 경제적인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정도는 국가대국가 간의 거래 관계에서는 합리적 희생으로 여겨진 것 같다.
https://www.brookings.edu/articles/how-have-trumps-trade-wars-affected-rust-belt-jobs/
하지만,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중국이 미국과의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고, 미국 국채 <-> 중국 공산품의 구조에도 눈에 띄는 균열이 생긴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규제와 관세 부과 조치 등으로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줄어들면서, 미국 국채를 매입할 여력이 감소되었고, 중국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미국 국채뿐만 아니라 금, 유로화 자산 등으로 다변화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미국 역시도 트럼프가 재집권한 이래 반대급부로, 리쇼어링 정책을 펼치며 다시 자국 내 제조업의 부흥을 통해 기존의 세계 경제 패러다임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교착 상황이 지속되면서, 2022년 이후 미국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인해 기존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서 중국이 미국 국채를 매도하고, 미국 채권시장에서 변동성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미국 국채 시장에서 수요가 감소하여 금리가 상승하는 효과 발생했고, 특히, 미국이 지속적으로 재정적자를 기록하며 국채 발행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수요 감소는 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중국은 단순히 미국 국채를 줄이는데 그치지 않고,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해, 위안화 무역 결제 확대, 금 매입 증가, 다른 통화자산 비중 확대 등의 전략을 병행했다. 이러한 대결구도로 가면서 중국은 금을, 미국은 비트코인을 매입하고 있다. 동시에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비(非) 달러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미국 역시 이에 대응하여 중국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https://mobile.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5020918040291151
https://www.yna.co.kr/view/AKR20241023152251009
2. 미국은 과거처럼 중국이 국채를 대규모로 받아주던 ‘수요자’ 역할을 대체할 다른 매입처를 찾아야 했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굳어져 있던 국채 시장의 판도가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국의 국가채무 문제는 사실상 ‘연례행사’가 되었다. 해마다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 증액 문제가 정치·경제 뉴스 헤드라인에 오르지만, 그 천문학적인 숫자는 일반인에게 크게 체감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부채도 만만치 않게 심각하지만,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정부부채는 GDP 대비 55% 수준이면 미국은 122% 수준이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42504
미국 입장에서는 매년 늘어나는 이자 부담과 재정적 압박이 몹시 과중하다. 2024년 말 미국 국가 채무는 약 36조 달러에 달한다. 최근, 국가 채무가 빠르게 증가하는 주된 이유는 대규모 재정지출(팬데믹 지원금, 인프라 투자 등)과 세입 감소(법인세 인하, 감세 정책 등) 때문이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076246639123440&mediaCodeNo=257
국가 채무가 늘어날수록 정부는 매년 더 큰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2024년 기준 미국 정부의 이자 지급 비용은 연간 약 1조 달러에 육박하며, 이는 미국 연방정부 전체 지출의 약 1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국가 채무가 과도하게 많아질 경우 채권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를 잃고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으며, 금리가 상승하면 정부의 부채 상환 비용이 급격히 증가해 재정적 위기에 처할 수 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1195360i
3. 미국의 국가 부채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에 흥미를 일깨우는 새로운 주체가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스테이블 코인'이다. 코인... 암호화폐는 태생적으로 투기성과 탈중앙화 등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정부에겐 국채를 안정적으로 소화해 줄 잠재적 구원투수로 떠오른 셈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로, 발행량만큼의 ‘안전자산’을 반드시 준비자산으로 보유해야 한다. 그리고 이 안전자산의 상당 부분이, 달러표시채권 이를테면 미국 단기 국채(주로 90일 미만의 단기물)로 구성된다.
향후에는, 테더(Tether), USDC(Circle) 등 주요 스테이블코인이 관리하는 준비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미국 단기 국채에 대한 수요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중국 매입’의 공백을 상당 부분 메워주는 동시에, 금융권 내 새로운 유동성 공급원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전통적인 ‘채무 변제’가 아닌 ‘디지털 금융 인프라’를 통한 우회 전략이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중국, 일본 등 전통적 미국 국채 매입국의 수요가 감소하는 가운데,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디지털 금융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채권 매입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국가부채를 해결하는 방식은, 전례 없던 새로운 접근이며 창의적이다 못해, 경탄을 금치 못할 수준이다. 블록체인기술의 발전에 따라 도출된 획기적인 방식이지만, 물론 힘이 있기에 실행가능한 방식이다.
https://cryptobriefing.com/stablecoins-demand-t-bills-growth/
4. 최근 나스닥 등 미국 주식시장이 큰 폭으로 하락하자, 많은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몰려갔다. 주가가 급락할 때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 같은 안전자산을 대거 매입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수요 증가로 인해 채권 가격이 오르면 반대로 채권금리는 하락하게 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금리가 낮을수록 국채 발행 비용(이자 부담)이 줄어들어 재정 운용에 유리한 환경을 확보할 수 있다. 가령 1조 달러 규모의 국채를 발행한다고 가정했을 때, 시장 금리가 1%만 내려가도 매년 100억 달러(약 13조 원)에 달하는 이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정부가 혹시 증시 하락을 전략적으로 방치하거나 그 흐름을 어느 정도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실제로 특정 시점에 국채 발행 일정을 잡으면, 시장이 공포심으로 채권을 많이 사들이는 ‘저금리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의도적으로 증시를 ‘붕괴’시킨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최근 미국 국채 발행 시기와 증시 조정 시기의 상관관계를 주목하는 분석가들은 계속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지금 미국 국채 시장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이 빠진 자리를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어느 정도 대체하고 있고, 전통적 투자자들이 시장 변동성에 놀라 국채로 몰리는 상황이 맞물리며,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한층 ‘유리한 조달 환경’을 노려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에도 이런 국채 발행 전략이 뒷받침해 준 재정 여력 덕분에 친기업 성향의 각종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향후 이 흐름이 미국 금융시장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지, 아니면 의도치 않은 새로운 리스크를 야기할지는 아직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암호화폐라는 새 판이 미국의 국가채무 문제에 어떻게 활용되고, 이 과정에서 주식·채권 등 전통 금융시장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지켜보자...
5. 피곤하고 번거롭지만, 인간은 살아 있을 때, 세상의 흐름과 발맞춰가야 된다. 단순하게, 미국과 중국, 어느 편에 설 것이냐라는 이분법의 이념 논리에 잠식되면 현실적인 대처를 할 수 없다. 중요한 아젠다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하면 생존하기 힘들다. 책상 앞에 앉아서 키보드 몇 자 두들기고 생각하고 전략 짜는 게 사실 그리 대수로운 일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옛날에 동굴에서 자고 있는데 맹수가 내 가족을 습격할지도 모른다는 두렴움에 보초를 서는 것이랑 비교하면, 이게 그렇게 고단한 일은 아니다. 그저 이 하락장의 끝이 어딜지, 반등이 언제 올진 시점을 예상할 수도 없지만, 전체적인 큰 그림 정도는, 잡고 있어야 심적으로 좀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