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언을 구하다 보면, A라는 사람은 하라고 하고, B라는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할 때가 있다. 말하고 보니, 웬만하면 대부분 이런 상황 투성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완전히 반대되는 말들도, '조언'이라는 동일한 단어로 Labeling 될 수 있다. 실상은, 조언이라는 미명으로 둔갑된 녀석들이, 얼마나 여기저기서 오남용 되고 있는가. 조언의 탈을 쓴 채, 허영심을 뽐내고 으스댄다거나,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대에게 권위를 보여준다거나, 혹은 내가 겪은 국소적인 경험을 토대로 진리를 통달한 듯 심취하여 마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삶의 해답지를 공유해 주는 척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들었던 조언이나, 내가 남에게 (주제넘게 했던) 조언들은 상대나 내 욕망의 투사체에 불과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조언의 방점은, 위로보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있는데, 누구도 50/50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정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뭐가 더 좋은 결과일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 물어보는 거겠지. 이 말인즉슨, 실상은 그냥 내가 결정하나.. 상대 말 듣고 결정하나, 결과는 모른다는 것이며, 자연히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마음 가는 대로 살다가 큰일 나요'라는 조언도 있겠으나, 서로 다른 상황에서도 통용되는 하나의 진리처럼 쓰이는 조언은 없기 마련이다.
2.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와 같은 물음은 사실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면에 내포되어 있는 욕구는 오롯이 본인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생을 회피하고 싶은 것인지 VS 배움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지 vs 둘 다인지 vs 그냥 삶이 따분해서 하는 상념인지.' 이것마저 잘 모르겠다 말하는 것은, 최소한의 분별력을 갖고 있지 않은 성인이라고 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조언의 완벽한 상태는, 아무것도 듣지도 해주지도 않을 때라고 본다. = 조언 무용론. (같은 성인 기준)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말이 전부다. 무책임하게 들리면서도, 핵심을 짚어주는 말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신호의 교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험이 많은, 소위 말하는 사회적 성공을 한 사람들은, 선택지를 골라주지 않는다. 괜히 선뜻 골라주면 결과에 대한 괜한 책임이 따르고 신경만 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고의 선택은 늘 자신이 좇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3. 결정의 미학은,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때에 있다. 100%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그 결정이 내 마음을 좇은 것이라면, 결과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핵심은, 내가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결정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충분한 고민들이 있었는지?, 그 결정이 나를 어디로 도달하게 만들지는, 전적으로 내 손밖을 떠나는 일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녀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좋은 부모이고, 각자가 내린 결정을 지지해 주는 것이 건강한 관계이다. 믿음직 해보이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유를 위탁하고 결정권한을 위임한다거나, 자신의 준거집단에서 주류로 채택된 길을 무작정 답습하지는 말자. 서서히 죽어가는 길이다. 쓸쓸하고 갑갑한 상황 속에서도, '멋진'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 결정해 왔구나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심심한 위로를 삼을 수도 있다.
살다 보면, '~했제' '~하지말라했제'하며 사후적으로 선후관계를 인과관계로 치환해서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 정도는 감내해야 된다. 하다 보면 물론,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잘 안 될 때가 있어야, 비로소 잘 될 때라는 개념도 성립이 된다.^^
결정은 결국 내가 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