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는데,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점점 “오만”해지고 있다 느끼는 요즘이다. 이유는, 우리가 전보다 간접 경험을 하기 쉬워진 시대이기 때문이어서 그런 듯하다.
1.21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대다. 많은 사람들이 자산 가격의 상승이나 SNS의 영향으로 인해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명목 GDP)은 반세기 만에 912배의 비약적 성장을 이루었다(1970년: 2.8조 원, 2024년: 2549조 원). 따라서 우리가 각자의 상황에서 사투를 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빈곤을 내세워 절대적 빈곤의 애환마저 탐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선은 지키자(?)
2.경제적 발전은 사회 구성원들의 경험의 폭을 확장하는 데에도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과거에는 나고 자란 곳에서 삶의 반경을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보니 경험의 폭도 제한적이다. 반면에 지금은 자유로운 국내외 여행,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동호회·동아리, 원데이 클래스와 같은 배움의 장 등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다양하다. 더불어 온라인에서 접할 수 있는 “간접 경험”은 무궁무진하다. 물리적 시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구글링·생성형 AI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색할 수 있으며, 유튜브에서는 각자의 일상에 마주치지도 못했을 타인의 삶을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부족의 일상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상부터, 부자나 빈자의 브이로그를 침대에 누워 볼 수 있는 삶,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얼마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인가. 어찌 됐든 경험이 “풍족”해졌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3.그런데 살다 보면, 무언가 많아진다는 것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부분에서 얻은 만큼 다른 부분에서 잃게 되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간접 경험”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이를테면 간접 경험이 풍부해질수록, 자연스럽게 모든 대상(다면체)을 단편적인 이미지로 소비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문제의식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세상·사회·대상, 특히 타자의 상황을 글이나 영상으로 간접 경험하게 되는 빈도가 늘어남에 따라 갖게 된 자신의 인식을 토대로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간접 경험”을 통해 재미를 느끼고 사고의 외연이 확장되는 것과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보편적으로 오만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간접 경험을 토대로 인식한 단편적 이미지들로만 판단하고 평하고 논하다 보니 우리는 사실상 거의 모든 지점에서 좁힐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게 되었다. 점점 더 광범위한 사회 분열이 진행되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도, 괜스레 공격적인 댓글들을 쉽게 접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본다.
4.누구나, 내가 어떤 것을 간접 경험했을 때 “안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막상 그것을 직접 경험하고서야 느꼈던 이질감을 기억하지 않는가?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견이 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라는 말처럼, 간접 경험이 수십, 수백 번 반복되더라도 하나의 직접 경험에 비견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때문이다. 이따금 나는 이 사실 때문에 무력감이나 상실감에 빠지기도 한다. 청승맞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직접 경험이 쌓일수록 결국 이번 생에서는 내가 직접 경험해 볼 수 없는 영역들이 있으며, 결국 내 존재의 한계와 생의 유한함으로 인해 내 주변의 가장 가까운 존재들마저도 끝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삐삐로 연락하던 시절, 관계에 있어서 적당한 연결과 건강한 단절이 적절히 배치되었던 세상을 살아갔던 시대의 감수성이나 낭만 혹은 답답함과 오해들, 나와 다른 성별이 바라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의 소중한 기억들과 그 반대편의 애로사항들, 이미 노쇠해져 버린 심신을 이끌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일상의 소중함과 가장 평범한 버거움들, 어떠한 연유로든 여느 기준에서 정규분포 바깥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삶의 특권 혹은 애환들을, 나는 끝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의 반경에서 먼발치에 서 있는 당신과 나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나마 서로를 이해한다는 착각을 하며 살아갈 뿐이다. 동일한 경험도 다른 시간 속에서는 같지 않다.
이것이 내가 “간접 경험”으로 누군가를 안다고 판단하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이르게 된 이유이다. 아마도 당신을 가장 슬프게 했던 경험 중 하나는, 당신 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당신을 이해한다”고 담담히 이야기하며 그 사이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목도했던 순간일 것이다. 당신이 가장 위로받았던 순간 중 하나는, 누군가 당신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그저 수용해 주는 사람의 포용력 있는 태도였을 것이다.
5.가끔은, 이렇게 오만과 편견으로 점철된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타자를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의 문제에 봉착하곤 한다. 날씨도 선선하니 다소 헛헛한 날이다.
6.결국, 세상 밖으로 나가 단 하나라도 직접 경험을 쌓는 것, 그래야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를 높이고 연대하고 상호 존중할 수 있는 시대에서 우리가 조금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P.S. 댓글의 저열함은 직접 경험의 빈곤함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니, 너무 연연하지 말자. 짠한 대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