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세상관찰

자립.. AI.. 가속화

by Evan greene

1. 이직 후 혼자 일하다 보니, 같이 일할 때의 장점을 새삼 느낀다. 돌이켜 보니,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현명한 선배, 말 안 해도 알아서 하는 똑똑한 후배들과 같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업무는, 사고의 외연을 비약적으로 확장시켜 준다. 개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투자로 이른 나이에 상당한 자산을 축적한 동료들, 숫자에 대한 책임감을 넘어 집착을 알려준 회계사형들, 인생이나 커리어에 다양한 관점을 공유해 준 해외대 출신 동기들, 모두가 내게 데미안이었다.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문득 그립다. 종종 여의도를 가는데,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괜히 반갑고 그렇다. 그럼에도, 난 지금이 더 좋다.


2. 생성형 AI가 상용화되고부터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녀석이 재편하고 있는 세상의 패러다임에서 부가가치를 내는 포지션은 '의사결정권자'밖에 없기 때문이다. AI 좀만 써봐도 안다. a. 후배 필요 없고, 인턴 필요 없네? b. 뭐야, 나보다 낫잖아? 실제로, 혼자가 되니, 다양한 업무 Tool을 활용하게 되고 생산성이 더 좋아졌다. GPT 4.5를 비롯해서 Pro 버전까지 쓰고 있는데, 매일 놀라움의 연속이다. 앞단의 자질구레한 리서치와 분석의 대략적인 얼개를 잡아주니, 시간이 비약적으로 단축된다. 더불어 굳이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느끼는 불필요한 감정소모도 없으니 스트레스가 현저히 낮아졌다. 생성형 AI는, 불의 발견, 종이의 발명, 바퀴의 발명을 상회하는 미친 혁신이다. 하루하루 AI에 감탄하면서도, (나 포함) 인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회의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3.‘심리적, 경제적 자립을 위한 끄적임’이라는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업로드하고 있다. 어느덧 일 년 반이 지났고, 지향하는 바에 보다 가까워진 듯하다. 의식적으로 '자립'이라는 상태를 추구한 것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AI의 상용화로 인해, 가속화된 부분도 있다. 내가 자립을 하려는 이유는, 남한테 아쉬운 소리 듣기도, 하기 싫어서다. 누군가에게 공연히 기대하거나, 딱히 바라고 싶지도 않고. 친목을 위시한 이런저런 모임은 점점 안 가게 된다. 일도 바쁘니... 웬만하면 쉴 때는 혼자 휴식하게 된다. 오늘 간만에 휴가였는데, 차도 점검도하고 기분전환 겸 바다 다녀왔다. 그러다 잠 와서 주차장에서 한 시간 잔 듯. 이직하고부터는 한 달에 하루는 도서관에 간다. 한적한 주말에는 반나절 동안,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다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최근에는 아이스하키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요 녀석 참 매력 있다. 밤 10시에 가는데, 거리에 차도 없고 한산하니.. 한 번 하고 올 때마다 기분전환도 된다.


4. 한 달 내에 전에 만났던 X 여럿한테 연락이 왔다. 으스대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들릴 수 있겠다. 이 공교로운 타이밍이 신기하면서도, 기분은 묘하다. 봄이라서 그러겠거니 하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참 사람 인연이라는 게, 아무리 가까운 사이도 멀어지고, 한때는 별로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하는 게 부지기수인 것 같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결국, 가족이 아니고서야 생면부지였던 사람과 구축된 관계를.. 노력으로 유지하려 시도는 대체로 수포로 돌아갔던 것 같다. 인간관계는, 가족 그리고 몇몇의 친구들이면 충분하다.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거나 취미가 비슷하면 자주 보고 가깝게 지내는 거고, 그러다 아니면 또 멀어지는 거고. 이러다 나도 가정이 생기면, 현재의 관계들도 조금씩 멀어질 수밖에 없겠지. 자연스러운 거고, 각자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5. 어떤 인간관계든 서로가, 심리적으로, 그리고 또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립을 해야 오래간다. 가족도 예외가 아니다. 대체로, toxic 한 관계는 자립하지 못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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