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세상관찰

끄적끄적.. 체인소맨

메슬로우 욕구

by Evan greene

1.

체인소맨은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을 끊임없이 나열하며, 신경계를 흥분시키고 감각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무엇보다 양팔과 머리에서 전기톱이 나오는 참신(?)하면서도 기괴한 캐릭터가 시선을 끈다. 잠깐이라도 지루하면 채널을 돌려버리는 시대이니, 안간힘을 주며 시청자를 붙잡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생각해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은 늘 이 소임을 충실히 해내오고 있는 듯하다. 나루토, 이누야샤, 원피스, 디지몬, 피카츄….같은 유년시절의 애니메이션들을 보며, 넋 놓고 티비 앞에 앉아 혼을 빼앗겼었다. 최근에 나온 진격의 거인, 귀멸의 칼날들도 시각적 연출이 정말 화려하다.

2.

체인소맨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은 겉으로는 모두 악마를 무찌르기 위해 모였지만, 생존, 복수, 생계, 쾌락 등 서로 다른 서사와 동기를 가지고 있다. 덴지의 경우, 그저.. 인간의 3대 욕구에 충실한 캐릭터로, 가슴을 만지고 키스를 하기 위해 악마와 싸운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악마를 죽이려는 사람의 시선에는, 덴지의 모습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저런 녀석과 함께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도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덴지 주변인의 시선에 동조하며 덴지를 관찰하게 된다.


하지만 덴지는 이런 주변의 평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가슴을 만지려는 욕구로 움직이는 자신이, 가족에 대한 복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보다, 당당하지 않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이따금, '가족을 위한 복수는 거창한 것이고, 스킨십을 하기 위해 행동하는 내가 왜 폄하되어야 하는가?!' 일갈하며 되려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겉보기에 단순하고 1차원적인 인물 같은 덴지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생각에 돌멩이를 던진다. 사람들은 점점 그런 덴지의 모습에 익숙해지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명예를 위해' 등등 통상 숭고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동기가 됐을 때만이, 삶의 의미나 가치를 배타적으로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3.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뿐만 아니라, '어떤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바람직함"이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덴지처럼 생리적인 욕구만을 충족하기 위한 삶은 옳지 않으며, 항상 무언가 더 대단한 것을 좇아야 한다는 믿음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체인소맨은 삶의 목적에 대한 다양성을 전시하면서, 이와 같은 '당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흥미롭게도, 메슬로우가 구분한 욕구의 위계에 대한 도전으로도 볼 수 있다.



메슬로우는 생리적 욕구를 피라미드의 하층부에 배치하고, 존중, 자아실현 등을 상층부에 배치하면서, 인간은 단계적으로 더 높은 욕구를 지향하고 충족해야 된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덴지는 '자아실현이라는 최종적인 욕구에 도달하지 않고 어찌 생리적 욕구를 운운하며 행동의 준칙으로 삼는가'라는 시선이 오히려 편협한 것이라 반응하며, 조소를 띄는 듯하다.


4.

물론, 이것이, '생리적 욕구에만 머물러 있어도 좋아', '자아실현/존중/소속감과 같은 것에 목메지 않아도 돼!'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삶의 목적에 있어서도 우리는 '자율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옷을 입고, 내가 어디 가서 무얼 하는지에 대한, 삶의 모습에 대한 선택의 자유뿐만 아니라, 오히려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지언정, 삶의 동기와 목적에 있어서도,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해방감을 느끼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덴지의 일갈은, 생리적 욕구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을 사회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의 자기 합리화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저항이다.


욕구의 위계를 타고 올라가서 뭔가 더 대단해 보이는 것들을 해야 한다는 것이,


모든 인간이라면 예외 없이 지향하게 되는 아주 자연스러운 욕구의 발전 단계인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바람직한다고 여겨지는 사회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욕구'인 것인가?

마음 깊이 들여다보며, 이 두 상태에 대한 명확한 분별이 필요하다.


5.

그러기 위해서는 나사가 하나 빠져야 한다. 그래야 다르게 볼 수 있다. 나사가 빠져보면 우리는 기계와 달리, 애당초 고장이 나거나 불량인 상태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시선에 덴지는 영락없는 철부지 소년일 테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실천하지 못한 삶을 만끽하는 자유인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머릿속의 멋진 계획은 왜 줄곧 엉성한 행동으로 그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