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릿속의 멋진 계획은 왜 줄곧 엉성한 행동으로 그치는가
요즘은 훌륭한 계획을 세우는 게 어렵지 않다. 조금만 검색해도 다 나오고 AI까지 도와주니 수월하다. 더불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앞다투어 노하우와 비기를 공유해대고 있으니, 정보 비대칭이 0에 수렴하고 있는 듯하다. 전문가 될 수는 없더라도, 누구나 일정 수준까지는 할 수 있으니 나는 이 시대를 '오픈북' 시험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진정으로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전보다 훨씬 더 멋진 계획을 세우더라도, 정작 그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과의 괴리에 있다. 행동으로 옮기려고 할 때면, 착수하기가 왜 그렇게 힘든지, 공연히 허비한 시간만 해도 상당하다. 어찌어찌 시작할지라도, 생각했던 것처럼 진도도 수월하게 나가진 않는다. 실행까지는 왜 이토록 지난한가?
2. 하이에나가 너무 많아~
아무래도 집중력의 분산의 탓이 크다. Attention economy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도처에서 내 집중력을 갉아먹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마당에, 공연히 나는 왜 내가 이걸 하지 못하는가? 하며 애꿎은 나의 의지만 힐난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개인의 의지는 그다지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소셜미디어든 스마트폰의 게임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우리의 주의력을 조금이라도 가져가려고 혈안이 된 하이에나들이 너무나 많기에, 개인의 의지박약으로 탓하기에는 유혹이 너무나 강할 뿐이다.
개인.. 개인.. 개인.. 모든 득과 실은 한 개인의 어깨에 달려 있다는 중압감이 있다. 오픈북 시험인데 왜 100점 못 맞음?이라는 비아냥을 피해낼 재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마치, 제도적으로 신분제가 없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는 메커니즘과 동일하게,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내 의지가 강인한지? 나약한지로 치환될 뿐이다.
3. 묵언수행
20살의 어느 겨울, 묵언수행을 하러 산에 갔다. 일주일 넘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새벽 4시경부터 밤 9시까지 명상을 했다. 물론, 혈혈단신으로 간 것은 아니었고 위빳사나라는 인도의 명상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그때의 경험은 여러모로 내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지대한 영향을 줬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그 시기에, 아마도.. 처음으로 '비워낸다'라는 것을 체득했던 것 같다. 그 이전의 20년 동안은 늘 배우고 그것을 내 안에 쌓아가는 '입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데만 전념했지만, 내가 하나의 출구로써 무언가를 비워낸다는 관념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4.
게걸스럽게 무언가를 내 속으로 집어넣지 않고서는 베기지 못하는 현대인의 병리적 현상, 잠깐이라도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만지막 거리며 이런저런 어플들을 클릭한다. 찰나의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마트폰과 연결되는 것이, 사실은 종속이고 의존인 것을...
주의력이 도둑맞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의미 없는 스크롤링은 유아적 방종임을 직시하자.
스크롤 내려봤자 더 공허하다. 비워내는 법을 배우자
권태로움이 비집고 갈 틈을 만들어보자
5.
이것마저 훌륭한 계획이지만, 결국 행동으로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이러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