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랭드보통의 시선은 언제나 참신하다. 어떻게 '섹스'라는 소재를 이렇게 다룰, 담대한 생각을 했을까. 그의 지적인 자신감이 유독 돋보였다. 예컨대, 사랑이란 본디 성욕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이 씬(?)에서 지배적인데, 이는 주장의 뒤편에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슨이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철학자 쇼팬하우어라는 거장들이 우두커니 서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성욕의 노예라는 주장이 굉장히 저속하게 들리면서도 권위가 있는 이유이다. 그래서 머리로는 '그게 전부가 아니야'하고 저항할 수는 있지만, 실상은 그걸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게 되기 마련이다.
2. 하지만 알랭드보통은 마치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21세기 현대인이 갖고 있는 정신적 애환, 특히 외로움을 승화하기 위한 목적을 덧붙이며 사랑과 성욕, 섹스에 시의성 있는 해석을 덧붙여 그 권위에 도전한다.
"네들이 아무리 탄탄해도, 21세기에 직접 살아가고 경험하는 내가 관찰한 현실을 담아내고 있지는 못하잖아?" 하며, 섹스란 인정욕구의 발현이기도 하다 등 여러 시각을 덧댄다.
3. 한 인간이 갖는 페르소나는 자식, 부모, 친구, 연인, 상사, 부하직원 등 사회적 동물로서 입체적이다. 따라서 주어진 상황에 따른 규범과 준칙을 맞추며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거듭,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처세하다 보면, 이따금 강한 싫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섹스는, 육체를 매개채로 우리 스스로를 치장하지 않은 채 존재하며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참신한 관점도 있었다.
따라서 섹스를 종족 보존을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는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의 독점적 해석은, 21세기라는 맥락과 현대인이 느끼는 좌절과 무력함 등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권위적이기만 한 진부한 해석이 돼버리고 마는 것이다.
4. 아무쪼록 알랭드 보통의 시선은 과거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참된 지식인의 자세를 엿볼 수 있고, 나는 알랭드보통을 호가호위하며 약간의 승리(?)를 만끽할 수 있는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더불어, 이 책을 읽다 보면 섹스라는 단어가 주는 선정적 이미지에만 다소 매몰되어 있었음을 깨달았다.
문득, 알랭드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연인에게 '사랑하다'라는 보편적인 언어를 '마시멜로 한다' 치환하여, 표현법에 변주를 준 것이 떠오른다.
알랭드 보통은, 언어라는 사회적 합의에 자주 반기를 들며, 갇혀 있지 않다. 그러니 그가 구사하는 언어와 관점은, 언어에 속박되어 있는 우리의 정신을 해방시켜 주며, 기존에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언어들이, '사실은 꼭 그래야만 했었다'라는 당위는 없었음을 밝혀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래는 내가 책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인용했고, 일 부분은 생각을 덧대었다. 재미로 보기 좋다.
[인용]
-"키스의 짜릿함은 입술의 감각수용체 덕분이지만,…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에 황홀감을 느끼는 것이라 꼭 키스가 아니더라도 다른 매개를 통해 전해지더라도 같은 심리가 작용한다." + "상대를 좋아한다는 고백은 그 자체로 무척 '에로틱'해서 종종 실제로 키스를 해야 할 필요성을 거의 없애준다."
=> 육체적 교류는 말초신경을 통한 감각적 자극으로 성적 흥분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마치 한 치의 오차 없이 작동하는 기계장치와 같지 않은 이유도, 정신적 교감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로틱하다, 야하다는 것은 따라서, 육체적인 매력을 전시함으로써 상대가 관능적으로 느끼는 신체적 변화일 수도 있지만, 정신적인 성숙함과 혹은 미숙함이 보이는.. 정규분포의 양극단에 보이는 양태 자체로서, 상대에게 궁금증과 상상을 자아내기도 한다.
-성적 판타지는 "이성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통상적으로 지켜야 하는 위계를 뒤집는다. 그리고 냉담한 규일이 개인의 소망과 바람을 지배하는 분위기 속으로 열망을 끌어들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 성적 판타지는, 사회적 동물로서 충족해야 하는 인간이 정신적 해우소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일상의 통제로부터, 시공간을 분리시키고 일어나는 탈선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듯하다.
=> 페티시는 한 사람이 과거에 남긴 어떤 기억들과의 연결고리다. 그리고 것은 어쩌면 비가역적이기도 한,, 수용해야 될 대상이기도 하다.
-인식을 확장하게 되네, 섹스/오르가슴은 단순한 육체적인 감각만이 아니다.. 상호성 때문! 자위를 하면 공허하고 외로움이 뒤따르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섹시함은 어디서 오는가? 외면이다. 그리고 외모는 진화생물학적으로 건강함에 대한 끌림이며, 이것은 본능의 영역이다.
-"상대에게서 자신에게 없는 보완적인 특징을 찾아냈을 때, 그 사람을 '섹시하다'라고 느끼고, 우리 자신의 불균형적인 측면을 더 자극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감을 갖게 된다."
- "솔직히 토머스와 오래 사귈 마음은 없다. 토머스의 욱하는 성질이나 동물에 대한 과도한 애정, 조깅에 광적으로 흥분하는 것을 평생 동안 참을 자신이 없어서다"
-"오래된 부부가 더 이상 성관계를 즐겨하지 않게 되는 이유도, 관계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다시 규정되고, 특히 자식들이 생겨나면 아빠나 엄마로서의 아이덴티티가 강해지면서 근친상간의 금기가 등장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고질적인 나쁜 관찰습관 탓에 간과해 왔던 매력적인 속성을 우리가 '깨닫게' 해준 것이다."
-"우리 시대의 남녀관계를 지배하는 통념은 ' 이상적인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렵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바로 옆에 있는 한 사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레이철은 순수한 느낌이 나는 여자다. 슈퍼모델 같은 새참함도 없고 페미스트적인 분노나 적개심도 없어 보인다. 가끔 야심이 크고 똑똑한 여자들 중에는 미녀들의 잘난 외모에 대해 분개하며, 세상사람들이 모두 여자의 지성이나 창조성보다는 몸매에만 관심을 보인다며 불쾌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레이첼은 전혀 그런 부류가 아니다.
-결혼 한 배우자에게 모든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맞다. 사랑. 섹스. 가족을 모두 챙겨야 함. 사랑하는데 섹스하지 않을 수 있고 섹스는 하고 싶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자식을 낳으면 사랑과 섹스 모두 위태롭다는 서술이 있었음
-지독한 성적 욕망을 겨냥해 경멸적인(하지만 온당한) 이야기들이 숱하게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그 욕망을 칭송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우리가 실체적인 인간으로서 호르몬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을 며칠씩이나 잊고 지내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성적 욕망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