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 수행 이후 어느덧 10년
1편 :
최근에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Monk mode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영미권에서는 꽤나 통용되는 단어인 것 같은데, 속세로부터 벗어나 수도승 모드로 돌입하여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기간을 갖게 되는 것을 뜻한다.
*Monk mode is a period of enhanced focus, discipline, and productivity where you commit yourself to completing a goal.
이 단어를 보니, 약 10년 전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꾸려나가기 시작한 분기점이자 첫 번째 결정이었던, 묵언수행을 위해 산속으로 들어갔던 날이 떠올랐다.
1. 인생의 분기점
20살의 나는 과하게 순진하고 순수했다. 읍면단위의 시골 촌구석에서 남중남고를 다닌 찐따였으며, 지금보다 20kg는 적게 나가는 깡마른 멸치였다. 서울에 오고 나서야 내가 공부 수준도... 뱀의 머리였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공부나 축구가 세상의 전부로 알고 살던 소년이었다. 야자시간에 조용히 하라고 해도 날라리 친구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카리스마 없는 반장이기도 했고, 이따금 수업이 끝날 무렵에 질문을 하는 눈치 없는 반장이기도 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롯데리아가 하나 있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져, 햄버거를 먹으려면 버스를 타고 30분을 나가야 했다. 중학교 때는 왕왕 산을 넘어 등하교를 하기도 했는데, 족히 10분은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카페는 대학 때 서울 와서 처음 와봤다. 시럽이 뭔지 몰라서, 던킨도너츠 알바생에게 촌놈인 게 티 날까 봐, 속으로 끙끙 앓았다. 결국 위트 있게 자연스러운 척하며 물어보고 싶었지만 숨소리도 마저도 사투리 였더 나는 '시럽이 뭐지요?'하고 혼자 응답하라 1994를 찍고 있었다. 서울토박이 대학 동기들이 지하철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된다는 장난을 쳤을 때, 속으로 잠깐이지만 믿었다..
계산 따위는 할 줄 모르고, 마음에 없는 말을 가감 없이 하는 투명하고, 방호복 하나 입지 않은 바보 같은 녀석이었다. 그래서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도 많이 줬다. 그래서 아팠고 미안했다
(중략)
어쨌든 인생에 회의를 느끼던 나는, 201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 돌연 묵언수행을 하러 전남 진안에 있는 산으로 들어갔다.(위빳사나라는 명상프로그램이 있음).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지금도 가깝게 지내고 있는 재욱이 형에게, 떠나기 전에 침낭을 빌려달라고 했다. 형 어머니께서는 '걔는 뭐 하는 애인데 산에 들어가서 묵언수행을 한다냐?'하고 말씀하셨다. 나의 가장 가까운 공대생 친구 녀석들은 내가 실종된 줄 알았으며, 이따금 웃으며 그때를 회상한다. 그 당시 7일간의 경험은, 소주 몇 잔 기울이며 몇 시간은 떠들어댈 수 있는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것이라 기회 되면 다음에 만나서 하자.
2014년 1월 1일, 나는 속세로 돌아왔고 곧장 1년 휴학을 했다. 뭐 그게 지금 양놈들이 말하는 Monk Mode인 거다.
증량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으며, 다소 공격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악기를 배웠고 언어를 공부했으며 여기저기 여행도 다녔다. 비로소 나는 전보다는 조금, 매력적인 사람으로 거듭났다.
2편 : 묵언수행은 좀 에바고
Monk mode라는 단어를 봤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이걸 잊고 살았지?'
당시 묵언수행을 끝내고 했던 굳은 다짐 중 하나가, 정확히 10년 뒤에 다시 이 경험을 꼭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미친 귀중한 경험이 10년 뒤에는 어떻게 느껴질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근데 어느덧 9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6개월 뒤에 묵언수행하러 산에 들어갈 결정은.. 아마 하지 않을 것 같다. 모르지 근데 또 미친 반골기질이 발동해서 갈지도.
어찌 됐든, 2024년 1월 1일은 내게 여러모로 상징적인 시점이 될 것이다. 휴학을 했던 그 시기만큼, 강도를 높여 Monk mode에 돌입할 순 없지만, 남은 6개월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타이트하게 가보고 싶다.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갖고 있음을 다시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의 10년을 다시 꾸려가 보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고? 심플하다. 육체와 정신을 더 단련할 것이다
육체 : 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내 몸은 지난 10년 간의 철봉으로 강하게 단련되어 있다;;; 물론 헬스도 종종 해왔었다. 조만간 바디프로필을 찍을 예정이며, 끝나면 다이어트를 멈추고 5~10kg 벌크업을 추가로 진행해서 트레이너와 상담 후, 대회 출전도 염두하고 있는 상태다.(염두만)
운동에 미쳐있다. 지금 내 머릿속은 온통 내일 가슴을 해야겠다는 일념뿐이다. 두 달 전에 다친 발목이 최근에 많이 호전되어서 이제 스쿼트도 할 수 있을 거 같다.
정신 : 사실 뭐를 덧붙인다기보다는, 내 단점을 좀 보완하는데 노력을 들이고 싶다. 결국, 내 자격지심이고 결핍으로부터 기인한 것인데, 난 곁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두는 경향이 있다. 이런저런 경험과 이유로 누군가에게 기대고 속마음을 터놓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두렵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어디서부터 이걸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더라. 무언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최근에는 몇십만 원 주고 전문심리상담가와 상담을 받기도 했다. 도움이 됐다.
또 무엇보다, 행운인 것은 대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벗을 만나며 회피 성향이 많이 개선되었다는 것. 물론, 이 글도 그런 내 노력의 일환이다. 혹자는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고 하지만, 난 이제 그런 것에 일희일비하기에는 꽤나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신경 안 쓴다. 이 글도 그냥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쓰고 있다. 이제 다 인정한다.
3. 다행인 것은 나를 지지해 주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앞으로 유무형의 도움을 주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 Monk Mode는 꼭 필요하다.
불금의 자기 합리화 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