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시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van greene Nov 04. 2023

서평 -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제목의미 : 내가 행복하다는데, 나라가 뭔 상관?


젊음이론 : 젊은 세대를 동정하고, 그들의 불행한 처지를 걱정하는 것



2016년에 썼었던 서평. 작금의 한국사회, 젊은이들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은 아닐까 싶다.



1. 책에 대한 비판 - 뒤틀린 행복



저자는 일본 젊은이들의 행복을 ‘뒤틀린 행복’이라고 묘사했지만,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에 ‘뒤틀린’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뒤틀림’이라는 단어는 ‘정상 상태’를 전제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정상’은 보통 대다수의 사람들의 행동에 어긋나지 않는 것을 칭하는데, 행복이라는 감정은, 상식의 범위 안에 있돼, 결코 다수결에 근거할 수 없는 개인의 독자적 영역이다.


저자 스스로도 ‘뒤틀리지 않은 행복’이 무엇인지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는데, 과연 저자는 행복의 역치 값이 어느 정도에 도달해야, ‘뒤틀리지 않은 행복’이라고 볼 지 궁금하다. 하물며, 저자는 젊은이들의 행복에 대한 역치 값이 낮아져, 개인의 노년과 일본의 미래에 대해 걱정된다고 했지만, 오히려 젊은이들이 느끼는 행복을 모두 ‘뒤틀림’에 귀속시키는 것은, 평소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행복마저 퇴색시켜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된다.



2. 책을 읽고 느낀 점.



2-1 한국의 젊은 이론과 그 속에 살고 있는 나.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한국에도 일본과 같이 ‘젊은 이론’이 있고, 이 ‘젊은이론’은 20대들에게 적지 않은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아프니까 청춘이다>과 같은 책들의 내용은 차치하고서, 제목에서부터 ‘아프지 않으면 청춘이 아닌가?, 청춘은 언제까지 아파야만 하는가?’ 등 젊은이들로 하여금 조소를 띄게 하고 있다. 또한, 매스컴이나 강연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정치인(혹은 기업 고위 간부)이 청춘에게 요하는, 노력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은, 교조주의를 연상케 한다. “너희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있더라도, ‘노력’의 저력을 믿고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 성공할 것이다!”



나는 한국 ‘젊은이론’의 중추에는 다음과 같이 ‘아픔-노력’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1. 잃을 게 없음, 청춘에는 반드시 아픔이 수반된다.(불가분) => 2.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 => 3. 성공은 노력의 결실, 실패는 노력 부족(아픔은 본인의 몫) => 실패했다면 다시 1번으로>



‘아픔-노력’ 메커니즘은 손에 잡히지 않는 ‘성공’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향해 우리를 진력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뫼비우스 띠에 젊은이를 가둔다. 뫼비우스 띄로부터의 탈피는, 이 정도의 아픔도 견디지 못하는, 이 정도의 노력도 하지 못한, 개인(젊은이)의 잘못으로 귀결돼 버리기 십상이다.



나는 청춘에게 있어 아픔과 노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젊은이론’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고 설득력이 없다고 느낀다. 애석하게도, ‘노력’은 ‘노오오오력’이라는 단어로 희화화되어버렸고, 노력 본연의 가치마저 퇴색 돼버린 것 같다.



2-2 행복의 역치 값



상술했듯, 나는 행복에 ‘뒤틀림’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지, 일본이나 한국 사회가 이미 뒤틀려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같은 뒤틀린 사회 구조에서 행복의 역치 값을 낮추는 것은 인간의 생존 본능일지도 모른다. 뒤틀린 구조 속에서 행복의 역치 값을 높게 유지하는 것은, 좌절로 직결(삶을 고단하게)될 확률이 굉장히 농후하다. 현재, 나(2016년) 역시 일본의 20대처럼 행복(생활만족도)에 대한 역치 값을 하향조정했다. 불교의 生卽苦, ‘삶은 고통이다’라는 기본 이념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애초에 인생 자체를 고통으로 상정하고 삶에 임하는 것이다. 정상 상태를 마이너스에 뒀으므로, 아무 일이 없는 ‘0인 상태’ 기분이 좋은 것이고, 플러스 값의 일이 생긴다면 상당한 행복을 느끼게, 자의적으로 시스템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최선책은 모든 세대가 합심하여 사회를 변혁시키고 뒤틀려 있는 구조를 펴서, 공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의 복합적… 총체적… 연쇄적인 분열을 목도하는 순간, 의욕은 사라지고 무기력 해져 버리고 만다. 행복의 역치 값을 낮춰서 삶을 추동하는 것은 한 편으로 씁쓸하기도 하지만, 염세주의에 잠식되지 않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자, 지금까지 내가(2016년) 찾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작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