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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
캄캄한 방에 나란히 앉아
함께 담요를 덮고
꽤나 철학적인 얘기를 했더랬지.
한참 열띤 토론을 하다가.
이내 조용해졌고.
너와 나는 캄캄한 방에서
앞만 보고 있었다.
" 꼭. 조난 당한 것 같애"
내가 말했다.
다시 조용한 방.
" 무인도에 갇힌 것 같애"
다시 말했다.
우리는 어두운 밤에
꽤나 오래 앉아있었고.
어둠에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내 눈을 가리는 시늉을 하며
눈을 감아보라 말하길래
눈을 감았다.
입을 맞추겠지 생각하는데.
두손으로
눈썹과 눈을 만지작 거리다가
콧대를 슬슬 쓸어내리더니
입술을 만지작거리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뭐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눈감고 그려본다 하길래.
잘그려지냐 물었더니
웃으며 모르겠다 말한다.
나도 그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쓸어보았다.
나는 잘생겨서 그리기 쉽지?
라고 하길래
너 그렇게까지 잘생긴거 아니라며
웃었고 눈을 떴고 얼굴이 다가왔고
입을 맞췄다.
그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