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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수필] 5일장의 소소한 풍경

얼떨결에 고양이 집사가 되다



 김포에는 5일장이 열리곤 한다. 장을 들어서면 각양각색의 파라솔 사이로 시장상인들과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북적댄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서면 고소하고 입맛을 돋우는 장터 먹거리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등갈비가 석쇠 위에서 달짝지근하고 구수한 향을 내며 겹겹이 쌓여있고, 기름기가 적당하게 빼여 윤기 나는 갈색 껍질과 야들야들한 살코기가 절정을 이루는 시장 족발이 지나는 이들의 미각을 자극한다.      



 하지만 장터 하면 빼놓지 않는 먹거리가 바로 장터국수와 파전이다. 장터국수와 파전은 시장 곳곳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우리는 시장 입구 가장 처음 집의 문을 열고 자리를 잡았다. 말아 올린 텐트의 옆구리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밀려왔다. 천정에 사람 키보다 조금 더 높이 걸려있는 두루마리 휴지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장터국수를 말아주는 아줌시는 어찌나 손이 큰지 삶은 국수를 한 손에 휘휘 말아 그릇에 담는데, 그 양이 족히 2인분은 될만한 양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하얗고 쫄깃한 면발이 그릇에 또아리를 틀면 바로 뜨끈뜨끈한 멸치국물이 투하된다. 거기에 파를 송송 넣으면 5일장만의 특급 수제 장터국수가 완성이 된다. 


 그릇째 들어 국물을 후루룩 마시니 모던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 장터만의 느낌이 풍겨 나온다. 국수를 젓가락으로 한 접 집어 먹고 속에 양념이 덜 밴 김치를 한점 집어 먹으니 그 맛이 가히 장터스럽다. 쫄깃한 국수의 면발이 식감을 살려주고 아삭한 김치가 그 밍밍한 맛을 잡아준다. 그 상태에서 진한 국물을 조금씩 들이켜면 입안에서는 궁중음식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두 젓가락 정도 국수를 들이켰을 때 마침 파전이 나왔다. 파전은 마지막에 센 불에 익힌 듯 겉 부분이 단단하여 씹는 맛이 있었다. 게다가 김포 5일장의 파전은 오징어와 함께 새우를 넣어 처음 입에 넣고 씹었을 때 그 향취가 매우 독특하다. 김포에는 대명항이 있다 보니 음식에 새우가 많이 사용되는 듯했다. 얼마 전에도 김포에서 40여 년을 살고 계신 요리연구가 한 분을 만났는데, 김포의 김장김치에는 생새우를 넣어야 김치의 시원한 맛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새우를 넣은 파전은 그 향이 매우 독특했다. 오징어만 넣었을 때와는 다르게 바다의 향이 물씬 풍겨나왔다. 말 그대로 해물파전의 맛이 났다.  장터국수와 파전 사이에 막걸리가 절실했으나, 다음 일정이 있는 관계로 아쉽게도 막걸리는 다음 기회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한편에서 닭, 강아지, 고양이, 오리 따위를 판매하고 있었다. 으레 시골장터의 모습 중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다. 철장 내에 십여 마리의 동물들이 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들 더운 날씨에 지쳤는지 누워서 누군가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은 집에서 기르던 동물들이 새끼를 낳으면 장터에 판매하기 위해 가지고 나온다. 이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한편으로 안돼 보였다.


 그중에서도 고양이들에게 많은 관심이 갔다.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고양이에 대한 왠지 모를 아련함과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앉아서 보고 있던 그때였다.


  “뭐하는 사람이여?”     


 판매하고 있는 아저씨의 물음이다. 


 “네 사진 찍는 사람이에요.”     


 “그래? 그럼 내 사진 좀 한번 찍어줘 봐.”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서 사진을 찍으려 하니, 아저씨가 한마디 거든다.     


 “아니 큰 카메라로 찍는 거 아냐?”     


 “카메라를 안 가지고 나왔어요. 요즘엔 핸드폰 카메라도 잘 나와요.”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니, 어색한 듯 포즈를 취한다. 그 포즈는 왠지 그의 삶이 묻어나왔고, 뭔가 아련했다.      

 “프린팅 해서 나중에 드릴게요.”     


 “그래..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가져가. 고양이 좋아하는 거 같으니께 주는거여.”     


 그런 연유로 얼떨결에 나는 고양이 집사가 되어버렸다. 검은색 고양이였다. 태어난지 한달가량 밖에 안되보였다. 까만색 털에 까만 발, 검은 눈동자까지 모든 것이 까맸다. 이 녀석의 태생이 도둑고양이든,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던 어찌 됐건 오늘부로 나는 그 녀석과 작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렇게 5일장의 방문은 끝났다. 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모습을 보려면 시장을 가라라는 말이 있다. 시장은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모습이 가득하다. 작고 큰 에피소드들 사이로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오늘 사람 사는 냄새를 맡아보고 싶다면 근처의 시장을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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