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프들은 어떤 저녁식사를 할까...
얼마 전 셰프들과 같이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것은 뭐랄까, 포토그래퍼들이 모여서 프로필 사진을 찍는 느낌, 혹은 미술가들이 모여서 전시회를 돌아보는 느낌 같은 것이었다. 아 물론 이러한 느낌은 외부에서 그들을 바라보았을 때의 느낌일 뿐, 그들은 단지 삼시 세 끼 중 한 끼를 영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임의의 그룹 속의 일들에 대해 외부의 세인들은 궁금해하는 법. 오늘은 셰프들의 저녁식사를 담아보았다.
이 날 모인 장소는 일산에 있는 한 요리주점. 이 곳은 우리 전통술을 콘셉트로 한 주점으로 꽤나 많은 우리나라 전통주 혹은 퓨전주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븟'이라는 요리사 커뮤니티의 일원인 이 요리주점의 주인은 친절하게도 이 아담한 장소를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주방에는 몇몇의 멤버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아 물론 오늘 초대받은 셰프들은 요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귀한 손님이기 때문이다. 주방 앞에는 길게 뻗은 바가 있다. 그 위에 놓인 몇 개의 접시에 오늘의 메인 요리들이 올라온다. 가지런히 걸린 팬들과 정갈하게 놓인 유리잔들이 주인장의 성격을 말해준다.
음식은 정갈하다. 데코레이션도 깔끔하고 맛도 그러하다. 뭐랄까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음식보다는 퓨전 틱 하다. 그 양념과 재료들이 신선하고 조명 아래에서 음식들의 자연적 색감이 더욱 빛을 발한다. 조그만 집게로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서 먹어보니 그 맛이 가히 친환경스럽고 아름답다.
이것들은 한국의 전통주들이다. 전통주의 병모습 이라면 의례 여우와 두루미 우화에서나 나올법한 호리병을 생각하겠지만 그러하지 않다. 각 지역의 술들은 이렇게 모던하게 변화되어 우리 테이블을 빛내주고 있었다. 이 날 가장 흔하디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술이었다. 이렇게 바에 놓인 술은 마음대로 따라 마실수 있었는데, 이러한 형태 때문인지 이 날의 자리는 더없이 행복하고 화기애애했다.
말 그대로 술장이다. 자린고비가 천장에 매어놓은 자반을 보고 밥을 먹었듯, 우리는 술장을 보고 취한다. 술장은 우리에게 취기를 가져다주고, 그것들은 세상의 독을 정화한다. 그래서 술장은 아름답다. 이 술장에는 많은 이들의 정성과 많은 이들의 웃음과 울음과 삶이 담길 것이다.
주점에서 인테리어로 놓인 술병들이 아니다. 우리 무리들이 한 병씩 야금야금 마신 병들이다. 한병도 같은 병이 없다. 그렇게 우리는 시음회를 하듯 품평회를 하듯 시간을 마셔갔다. 술은 어색함을 잡아먹고, 모두는 동화되어갔다. 술병이 늘어갈수록 우리의 관계는 또렷해져 간다.
이곳의 막걸리 잔은 '달잔'이다. 달잔은 잔의 아래쪽의 한편이 옴폭 올라와 있다. 막걸리가 잔에 가득 차면 잔은 보름달이 된다. 이야기가 익어가고 조금씩 막걸리가 입으로 흘러들어가면 달잔은 금세 반달로 변한다. 조금 더 이야기가 농밀해지고 건배가 잦아지면 달잔은 초승달로 탈바꿈한다. 그렇게 그렇게 마시다 보면 달잔은 어느새 검은 보름달이 되어있다. 우리는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달을 마신다.
밤이 깊어간다. 조명은 점점 짙어지고 밤의 장막은 더더욱 어두워진다. 귀에서는 기분 좋은 웅성거림이 들린다. 웅성거림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 속에서 간간히 웃음이 섞여 나온다. 술 그리고 밤. 그것들은 너무나 적정한 조합이라 사족을 붙인다면 원형의 아름다움을 해칠 우려가 있다. 단지 술과 밤은 어감상으로도, 실제로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깊어가는 밤 술은 관계를 싣고 그렇게 셰프들과의 저녁 식사는 막을 내린다.
모든 그룹들은 그 고유의 분위기들이 있다. 셰프들의 저녁식사는 역시나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갔고, 먹거리에 대한 철학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들의 단어 속에는 모든 먹는것에 대한 사랑이 보였다. 오늘 우리가 속해 있는 그룹은 어떠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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