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어 어르신으로 불릴지 노인네로 불리울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오늘 점심은 조그만 한식뷔페집에서 끼니를 때웠다. 뷔페라고 해봤자 반찬을 자유롭게 덜어 먹을 수 있는 육천 원짜리 일반 밥집이다. 이곳은 배달을 주로 하는 집으로 대략 5~6개 정도의 테이블을 놓고 간편하게 점심 손님들만을 받는 그런 선 밥집이다. 여섯 평 정도의 워낙 작은 식당인지라 식당의 미닫이 문 바로 앞까지 테이블이 놓여있다. 1인 테이블의 경우엔 현관문 앞에 배치되어 있어 바깥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밥을 세 숟갈쯤 떴을까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한두 방울 바닥에 동심원을 그리던 비는 금세 억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님이 있다면 세수를 마치고 세숫대야를 세상으로 들이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다들 갑작스레 쏟아진 비에 발을 동동 구른다. 이래서 우리나라 일기예보는 항상 틀리다니까. 그러니까 욕을 먹죠. 에잉. 여기저기서 갑작스레 기상청에 대한 쓴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하늘의 변덕으로 애꿎은 기상청만 쏟아지는 비처럼 욕을 먹고 있었다.
옆에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쏟아지는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현관 앞에 앉아 달디 단 싸구려 믹스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었다. 아마 식사를 끝내고 가려는데 비가 쏟아져 잠시 머무는 듯했다. 40대 후반에서 50대의 얼굴, 푸른색 티셔츠가 찢어질 듯 불룩한 배, 감색 바지의 허벅지는 터질 듯하여 앉아있는 모양새가 불안하다. 머리는 벗어지고 턱은 살이 붙어 두 턱이다. 이마에는 탄력 없는 주름이 세네 갈래 쓰여있고 연갈색 눈은 바깥을 바라보고 있지만 초점이 흐려짐을 반복한다. 약간 찌푸린 얼굴로 오른손에 들고 있는 싸구려 커피를 입에 들이킨다. 후루룩 후루룩 그 소리가 빗소리보다 더 요란하다. 그러다 옆에 있는 동행에게 흐흐거리며 실없는 농담을 주어 뱉는다.
어찌 저리 얌전치 못하게 먹을까. 한마디로 밉상이었다. 아무 감정 없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옆에서 밉상이 생겨났다. 그런데 과연 어여쁜 여자가 하늘색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저렇게 커피를 마셨어도 과연 이렇게나 밉상이었을까.
갑작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추해지는 거구나. 저건 자기관리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월의 풍파를 맞다 보면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몸에 남게 된다. 오래 사용한 물건들에 지저분한 흠집이 나는 것처럼. 오래된 물건은 교체를 한다. 새로운 물건을 구매하고 지난 물건들은 소각을 시킨다. 사람들은 오래된 것들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과연 그것이 추해지는 것이 맞느냐 아니냐에 대하여 누군가는 이야기할 수가 있다. 연륜이 느는 거야, 이 사람아 너도 늙어봐. 별수 있을지 아나. 맞아요 늙으면 다들 이렇게 낡아가고 추해질 거예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걸요. 하지만 나는 추해짐을 가지고 늙음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가 이야기했듯이 젊음이 상이 아니듯 늙음은 벌이 아닌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요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나와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안 쓰고 나만의 삶과 나만의 길을 가는 것은 좋은 것이지. 하지만 그러한 것들도 나이가 들었을 때 늙은이가 추태 부린다는 말을 듣는 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일 거야. 우리가 젊을 때, 그러니까 20대나 30대의 창창한 나이 때에는 사회가 그나마 관대하다. 물론 요즘 취업난으로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외모에서 풍겨 나오는 젊음과 푸른 기운 때문에 같은 일을 하더라도 용서가 되는 경우들이 많다. 하지만 꽃은 결국 시드는 법. 우리는 꽃이 시드는 그때를 준비해야 한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못난 겉모습에도 미워 보이지 않을 나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겉모습을 꾸미고 치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한계가 있는 법. 조금 더 늙어 뵈는가 젊어 뵈는가 몇 살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정도의 해결책밖에 안된다. 이러한 외모의 유지를 가지고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우리가 중년 그러니까 사오십대를 미움받지 않고 살려면-칠십 대가 넘은 노인들은 사회에서 생각하는 판단의 인식 선상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와 같이 관대하다-결국 우리만의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타인을 판단할 때 ‘표현’되는 것들로 대부분을 판단한다. 그중에 가장 쉽사리 보이는 것 중 하나가 외모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무기 역시도 표현되는 형식을 빌려야 한다. 그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말, 행동, 표정 등. 이러한 것들이 선행되기 위해 내적 충만이 가득해야 함은 분명하다. 이 선결문제들을 위해 우리는 나이 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들이 제대로 되었을 때 우리는 보통 ‘연륜’이라는 말을 쓴다. 나이가 들어 어르신으로 불릴지 노인네로 불리울지의 몫은 온전히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제대로 나이 드는 법에 대해서는 굳이 새롭게 기술하지 않아도 너무나 많은 좋은 글들이 있다. 오늘은 법정스님의 <친구에게>라는 글의 일부를 빌어본다.
친구여!
나이가 들면 설치지 말고 미운 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리, 불평일랑 하지를 마소.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적당히 아는 척, 어수룩 하소.
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하다오.
친구여!!
상대방을 꼭 이기려 하지마소. 적당히 져 주구려,
한 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
그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법정스님 <친구에게 中>